도자로 만든 검정 대나무숲…이승희 개인전 '공시성'
빛이 들지 않고 최소한의 조명만 비추는 어두운 공간 속 대나무 숲, 푸르른 댓잎 없이 검정 줄기만 꼿꼿이 뻗은 대나무 기둥 수십 개가 늘어섰다.

4m 높이의 대나무 기둥은 점토로 만든 도자 마디를 연결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던 대나무 마디들이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생경하던 검은 도자 대나무숲은 관람객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사색의 길로 이끈다.

'도자 회화'로 알려진 작가 이승희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박여숙화랑에서 14일 개막한 개인전 '공시성 SYNCHRONICITY'에서 선보이는 도자 대나무 설치작품이다.

각 대나무 기둥은 형태와 빛깔이 조금씩 다른 도자 마디 약 20개를 수직으로 연결해 만들었다.

이를 전시장 바닥 곳곳에 세워 공간 전체가 대나무 숲을 이룬다.

이승희는 도자기 형태가 아니라 그 표면의 물성에 관심을 두고 작업해왔다.

점토 물을 도자 흙 판 위에 바르고 건조하는 과정을 반복해 조선청화백자를 평면으로 재현한 대표 작업 도자 회화도 이러한 시도 속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도자기의 실용성을 제거하고 유약을 바른 도자기의 질감을 나타내고자 했다"라며 "대나무 설치 작업에서는 검은 도자가 빛과 반응하는 느낌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어둠 속에서 관람객은 시각만이 아니라 촉각과 청각, 후각까지 동원해 대나무의 색과 형태를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된다.

작품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다 우연적 요소 속에서 관람객이 서로 다른 느낌과 생각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 작가의 의도다.

청주대에서 공예를 전공한 작가는 30여년간 다양한 도자기 작업을 선보여왔다.

2009년부터는 13년째 중국에 머물며 새로운 도자 기법을 시도해왔다.

대나무 숲 작업은 단순히 도예가가 아니라 도자를 활용한 현대적 개념의 설치 미술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다음 달 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대나무 설치 작업과 함께 도자 회화 신작을 선보인다.

박여숙화랑 개인전과 함께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이승희: 2020 TA0'가 열리고 있으며, 코리아나화장박물관 '백자에 물든 푸른빛' 전시에서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도자로 만든 검정 대나무숲…이승희 개인전 '공시성'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