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 도운 희랑대사 조각상 국보 된다
고려 고승(高僧)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상이 국보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한 희랑대사(希朗大師)의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사진)을 국보로 승격, 지정한다고 2일 예고했다.

건칠희랑대사좌상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 조각으로, 고려 초기인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으로,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스승으로 전해지고 있다. 왕건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토지를 하사했고, 희랑대사는 이를 해인사 중창에 썼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과학적 조사 결과, 희랑대사좌상의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乾漆)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고 후대의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조각상의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처럼 신라~고려 초의 불상 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 기법이어서 희랑대사좌상의 제작 시기를 추정하는 데 참고가 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건칠은 옻칠한 삼베 등을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이다. 완성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이 요구돼 국내에는 남아 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 희랑대사좌상은 육체의 굴곡과 피부 표현 등이 자연스러워 조선 후기에 조성된 ‘신륵사 조사당 목조나옹화상’ ‘괴산 각연사 유일대사상’ 등과 달리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 체구,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퍼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은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문화재청은 “문헌 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 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며, 제작 당시의 현상이 잘 남아 있고 실존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 가치도 뛰어나다”고 국보 승격의 이유를 밝혔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