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산구 임곡동 오룡마을 주민, 폭우로 길 끊긴 마을서 사흘간 고립
"1t 트럭 바리케이드 삼아 집 지켜…달음박질로 철길 가로질러 바깥 왕래"
"하늘이 폭포수 쏟고 땅은 벼락 울려"…고립마을의 생존기
"산에서 돌덩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우르릉 쾅쾅 나.

무서워 죽겠는데 대피하려고 해도 갈 데가 있어야지."
광주 광산구 임곡동 오룡마을에 사는 고광연(77) 씨는 지난 7일 밤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이어진 폭우 상황을 "하늘이 폭포수를 쏟아내고 땅은 벼락같은 울음을 토했다"고 떠올렸다.

광주 도심으로 오가는 모든 길이 침수와 산사태로 끊기면서 주민들은 지난 8일부터 사흘 동안 고립된 마을에서 공포와 불안감을 견뎌야 했다.

고씨는 집 뒤편 산자락에서 자갈과 흙이 빗물에 섞여 쏟아져 내리자 1t 화물차를 바리케이드 삼아 현관문과 마루 창문 앞에 세웠다.

"하늘이 폭포수 쏟고 땅은 벼락 울려"…고립마을의 생존기
그런데도 불어난 흙탕물과 진흙은 마루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노부부는 전화로 자식들을 안심시키면서 꼬박 이틀을 진흙탕과 사투했다.

전날 철길 아래 굴다리 등 마을로 통하는 길이 다시 열리면서 중장비가 들어와 11일 오전 현재 고씨의 집 마당은 사람이 오갈 정도로 수습은 됐다.

마당 가장자리로 중장비가 밀어놓은 바위와 자갈 더미를 바라보며 고씨는 "또 큰 비가 내리면 저놈이 집을 집어삼킬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고씨의 집 옆으로 흐르면서 마을을 동서로 관통하는 오룡천이 범람해 이웃에 사는 김효남(66) 씨도 주택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봤다.

김씨는 "바윗덩이뿐만 아니라 산에서 쏟아져 내린 쓰레기가 하천 다리 아래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갈 곳 없는 물길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하늘이 폭포수 쏟고 땅은 벼락 울려"…고립마을의 생존기
오룡천 주변에는 비가 그친 뒤 주민들이 손수 건져 올린 각종 폐기물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쌓여 있었다.

김씨는 "폐기물 처리 비용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밤에 몰래 차를 타고 들어와 오룡산 자락에 버리고 도망간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오룡천 안까지 파고 들어가 바위와 자갈을 긁어내는 굴착기를 지켜보던 주민 심광택(74) 씨는 "저수지 둑이 터졌던 1989년 이후로 이런 난리는 처음"이라며 자갈밭으로 변한 발밑을 가리키며 "여기가 원래는 우리 집 논이었다"고 설명했다.

심씨는 고립된 사흘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물음에 "당장 밥 굶을 일은 없었지만 급하게 시내로 나가야 하는 노인네들이 철길을 달음박질로 건너서 차가 다니는 곳까지 걸어갔다"고 답했다.

"하늘이 폭포수 쏟고 땅은 벼락 울려"…고립마을의 생존기
산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의 길잡이 노릇을 한 오룡천을 따라가 보니 마을의 유일한 의료기관이자 무더위쉼터인 보건진료소 주변에도 바위와 자갈 더미가 그득히 쌓여있었다.

진료소 입구에는 '침수로 인하여 당분간 신룡진료소에서 근무하오니 급한 용무는 연락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오룡마을 보건진료소에서 신룡진료소까지는 자동차로 19분 거리다.

황룡강과 인접한 광산구 임곡동에서는 이번 집중호우로 오룡마을을 포함한 9개 마을에서 이재민 250여 명이 발생했다.

전체 농경지 1천35㏊ 가운데 90% 이상이 물에 잠겼다.

주택 40채는 침수, 6채는 산사태로 인한 붕괴 등 피해를 봤다.

"하늘이 폭포수 쏟고 땅은 벼락 울려"…고립마을의 생존기
도로 5개 구간과 농로 1곳이 유실됐으며 이재민 대피소 역할을 해야 할 경로당은 4곳이 침수됐다.

광산구는 육군 31사단 병력과 자원봉사센터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응급 복구를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