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구례읍 축사 밀집 마을 1천500마리 수해…일부는 고지대로 올라 생존
[르포] 지붕 위에서 살아남은 소들…물 빠지고도 못 내려와 '음매'
"지붕 위로 올라간 소들이나마 살아서 다행이지만, 어찌 내려야 할지 막막합니다.

"
9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1천500여마리 소들을 여러 축사에서 밀집 사육하는 이 일대에 전날 폭우로 하천 제방이 무너지면서 수해가 덮쳤다.

이른 아침부터 밀려와 차오르기 시작한 강물은 이내 마을 주택과 축사를 대부분 집어삼켰고, 늦은 밤이 돼서야 빠져나갔다.

물에 빠진 소들 대부분을 잃었을 거라 무거운 마음으로 마을을 다시 찾은 주민들을 맞은 것은 지붕 위에 오른 소들이었다.

축사나 시설에 갇혀 차오는 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소들은 마을과 축사 주변 곳곳에 죽어있었다.

반면 겨우 축사에서 벗어나 물이 흘러가는 대로 휩쓸리고, 발버둥 쳐 살길을 찾던 일부 소들은 축사 지붕이나 주택 지붕을 딛고 버텨 살아남았다.

[르포] 지붕 위에서 살아남은 소들…물 빠지고도 못 내려와 '음매'
수십마리 일부 소 무리는 고지대까지 올라 생존하기도 했다.

상당수의 소를 수해로 잃었지만, 일부나마 살아남은 자식 같은 소들이 축산 농민들은 반가웠지만, 더 큰 일이 눈앞에 놓였다.

물은 모두 빠졌지만, 지붕 위에 오른 소들이 내려오지 못하고 그대로 머물면서 3~4m 높은 곳에서 소들을 내릴 방도가 막막했다.

트랙터나 굴삭기 등 중장비를 동원하고, 방법이 여의치 않으면 축사 일부를 허물어 비스듬한 길을 만들어 소를 끌어내기도 했다.

수해에 놀란 소들은 마을 곳곳에 흩어져 힘이 빠진 듯 도망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주인이 소를 밀고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자 먹이로 유인해도 통하질 않았다.

[르포] 지붕 위에서 살아남은 소들…물 빠지고도 못 내려와 '음매'
체념하고 옆에서 죽은 송아지를 줄로 매 끌고 가자 그때서야 자식을 따라 움직이는 소를 보며 "죽은 자식을 알아보고 따라가네"라고 농민은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수해 복구는 시작도 못 하고, 전염병 예방을 위해 폐사한 소들을 치우고 살아남은 소를 구하기 위해 오늘 하루를 모두 보냈다.

전날 오후 1시께 전남 구례군 문척 해발 531m의 사성암에는 소 10여마리가 나타나기도 했고, 간전면 도로에서도 수해를 피해 온 소 떼가 발견됐다.

특히 사성암에 나타난 소들은 축사가 침수되자 피할 곳을 찾다 산길을 걸어 사성암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됐다.

사성암 앞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휴식을 취한 소들은 헐레벌떡 달려온 주인의 인솔로 다시 산에서 내려갔다.

[르포] 지붕 위에서 살아남은 소들…물 빠지고도 못 내려와 '음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