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얼룩조차 꽃이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보낸 춘천에 대한 감사와 헌사로 이 소설을 바친다.

"
소설가 이순원(63)이 오랜만에 신작 장편소설 '춘천은 가을도 봄'(아름 펴냄)을 독자들 앞에 내놓으며 전한 말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춘천은 가을도 봄'이던 시절, 절대 독재의 억압과 공포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 친구들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소설은 흔히 '엄혹했던'이라고 상투적으로 표현하는 1970년대 후반 춘천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한 소설가가 과거를 회고하는 형식이다.

허구지만 강원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섞인 듯한 인상도 준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얼룩'을 지녔다.

그 얼룩은 내면의 상처이거나 콤플렉스이거나 원죄와 같은 것들이다.

70년대 청춘의 얼룩진 초상…이순원 '춘천은 가을도 봄'
화자인 김진호는 법관을 꿈꿨던 첫 대학 생활에서 시위 선언문을 다듬은 '죄'로 처벌받고 학교에서도 제적된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두 번째 대학 생활을 춘천에서 하게 된 그는 이후 글을 쓰는 길을 걷게 된다.

그가 학보사 시절 만난 여학생 채주희는 속칭 '양공주'의 딸이면서 혼혈이다.

그래서 채주희는 자학적이고 외로운 인물이다.

채주희의 어머니는 딸이 더는 상처 받지 않도록 미국에 가서 살길 애원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다.

김진호의 당숙은 최고 학부를 졸업한 수재지만 4.19 시위 때 다리를 절게 됐다.

게다가 당숙의 아버지는 월북한 인민군이다.

연좌제가 그의 삶을 평생 옥좼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작가는 그러나 이들의 삶을 불행한 것으로만 비치게 하지는 않는다.

이들의 삶 속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물방울들을 따뜻하게 데우려 한다.

주인공 김진호는 시작부터 추락하지만, 방황과 이별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한다.

소설의 무대 춘천에선 가을도 봄이 되는 이유다.

주된 배경은 유신 시대에서 제5공화국의 초입이다.

이 시절을 묘사하는 여러 표현이나 주인공 가문이 친일 행적을 통해 부를 쌓고 정권에 부역해 특혜를 누린다는 설정 등은 우리 소설 문학에서 흔히 반복돼온 클리셰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소설에선 좌우 양쪽 모두가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 성향을 띠는 한국적 특수성이 작가 의도와 관계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소설 제목은 원로 시인 유안진의 시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순원은 "춘천을 가장 춘천답게 표현한 시의 제목을 소설의 제목으로 허락해주신 유안진 선생께 감사드린다"고 사례했다.

강릉에서 태어난 이순원은 198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가 당선돼 등단했다.

소설집 '그 여름의 꽃게', '첫눈', 장편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19세', '나무', 오목눈이의 사랑'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작가상, 동리문학상 등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