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8년 만의 장편 '일곱해의 마지막' 출간
백석이 시인으로 살았던 마지막 7년
1930~40년대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전쟁 후 북한에서 그는 시인보다는 러시아문학 번역가에 가까웠다.

조선작가동맹은 당의 창작 지침에 맞는 사상성 강한 시를 요구했고, 그의 시는 순수문학의 잔재가 남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찬양시를 쓰면 살아남고, 거부하면 숙청될 운명이었다.

머리와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해도 시를 쓰려면 이념에 맞춰야만 했다.

원하는 시를 쓰지 못하게 된 그는 번역을 하면서 시를 묻어두고자 했다.

그러나 시를 향한 마음은 접을 수 없었고 엄혹한 현실도 만만치 않아 속수무책이었다.

소설가 김연수의 신작 장편 '일곱 해의 마지막'(문학동네)은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변한 세상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한 시인의 삶을 그린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에서 김연수는 월북시인 백석(1912~1996)을 불러냈다.

시를 쓸 수도, 쓰지 않을 수도 없었던 불행한 시인은 백석을 모델로 한 주인공 '기행'이다.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이다.

1962년 5월, 삼수군 협동조합에서 일하던 백석은 '아동문학'에 '나루터'라는 동시를 발표한다.

1956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백석이 결국 쓴 찬양시이자, 살아생전 발표한 마지막 시였다.

이 시를 발표한 후 그는 1990년대 중반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0여년간 긴 침묵에 들어갔다.

소설은 번역을 하며 시를 멀리했던 백석이 다시 시를 쓰고, 결국 또 시를 접기까지의 7년을 담았다.

1957년께부터 이야기가 시작돼 1963년 여름에서 마무리된다.

백석의 전쟁 이후 삶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북한에서의 행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정부의 해금 조치 이전까지 '잊힌 시인'이기도 했다.

소설이 백석의 삶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는 않지만, 작가가 상상력으로 쌓은 이야기는 백석의 고독과 고뇌를 짐작게 한다.

"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32쪽)
백석은 자신의 문학관을 고집하다가 46세였던 1958년 숙청돼 양강도 삼수군 국영협동조합으로 쫓겨난다.

소설 속 기행도 되풀이해 좌절을 경험한다.

사랑도 이루지 못했고, 시인으로서의 꿈도 버려야 했고, 세상에 대한 희망도 시들어갔다.

당시 그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김연수는 생각한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과 비통한 삶 속에서 빚어낸 시들이 지금 이 시대에 빛을 보게 됐음에 주목한다.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라며 "이제 나는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된 그를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