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불이행'으로 세계유산 등재 취소 가능할까

"약속한 조치를 성실히 이행해 왔다"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의 말은 사실일까.

일본은 지난 2017년 12월 세계유산위에 메이지의 일본 산업혁명유산 관련 이행 경과 보고서인 '보전상황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 보고서에서 강제노역 조선인에 대해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쟁 전과 중, 후에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표현하며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 대표의 발언에도 있었던 '강제(forced)'라는 단어를 빼버렸다.

또 강제노역 피해 사실을 알리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군함도가 있는 규슈(九州) 지역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도쿄에 설치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산업유산 논란]③ "전체 역사 반영" 세계유산위 권고 무시

◇ 등재 때 약속 안 지키고, 세계유산위 권고도 무시

이듬해 6월 24일부터 7월 4일까지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앞서 일본이 제출한 이행 경과 보고서를 검토한 후 결정문을 채택했다.

세계유산위는 이 결정문에서 근대산업시설 23곳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전략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 2015년 결정문을 상기하며 그것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결정문은 전체 역사 해석에 있어 국제 모범 사례를 고려할 것과 당사국간 지속적인 대화를 독려했다.

이에 일본 측 대표는 "제39차 위원회에서 채택된 결정에 포함된 권고안을 성실하게 이행해 왔다"면서 "해석 전략, 정보센터 개관, 지속적인 대화를 포함해 결정문에 기술된 모든 권고안을 이행하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한다"고 밝혔다.

결정문에는 이행 경과 보고서를 2019년 12월 1일까지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할 것을 일본 측에 요청하고, 2020년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심사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알리라는 세계유산위의 촉구와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지난해 12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한 두 번째 이행 경과 보고서에도 강제노역 인정이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사항을 포함하지 않았다.

최근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서는 '약속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한 일본의 꼼수를 발견할 수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일본 정부 대표가 2015년 7월 등재 때 했던 발언 내용이 그대로 전시돼 있다.

오히려 전시 내용을 보면 한반도 출신자가 군함도 등에서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증언이 소개되는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꼼수는 조선인 강제 노역 등 전체 역사를 전시하라는 세계유산위의 권고를 이행한 것이라 결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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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재 취소는 규정상 유산 훼손·보전 안 된 경우만 가능

올해 개최되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지난해 12월 일본이 제출한 이행 경과 보고서에 관한 공식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지난 4월 20일 일본의 약속 이행에 대한 엄밀한 검토를 촉구하는 서한을 문화재청장 명의로 세계유산센터에 보냈고, 5월 12일 자 서신을 통해 "공정한 평가를 진행하고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검토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한편 우리 정부는 지난 22일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가 절차상 가능한지 검토를 요청했다.

이와 관련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서한을 통해 등재 취소 가능성 검토를 포함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에 충실한 후속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이 채택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 세계유산위원회 규정상 등재 취소는 유산 자체가 훼손되거나 제대로 보전되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한데 이번처럼 등재 당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도 절차상 등재 취소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고자 서한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등재 취소를 위해선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실제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가 퇴출당한 경우는 2007년 오만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과 2009년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뿐이었다.

아라비안 오릭스 보호구역 삭제는 당사국인 오만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으며,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세계유산 등재 구역 중심지에 드레스덴시 당국이 추진했던 대규모 교량 건설이 이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크게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취소가 결정됐다.

당초 6월 29일∼7월 9일로 예정됐던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연기돼 아직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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