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혜 한경갤러리 초대전

'물속 정원' 주제로 24점 선봬
바다와 계곡의 수중 생명을
한지에 은은한 색조로 표현
워싱턴·파리 등서 전시 호평
한국화가 한경혜 씨가 한경갤러리 초대전 ‘물속 정원’에 전시된 작품 ‘물속의 봄’ 앞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화가 한경혜 씨가 한경갤러리 초대전 ‘물속 정원’에 전시된 작품 ‘물속의 봄’ 앞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어릴 때부터 물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잔잔하기도 하고 파도처럼 생동감도 있고…. 맑고 투명해서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내외명철(內外明徹)의 경지 같은 물의 속성이 좋습니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태어나고 생명이 다하면 물이 빠져나가죠. 물은 곧 생명입니다. 그래서 더 물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25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초대전 ‘물속 정원’을 시작한 한국화가 한경혜 씨(45)의 말이다. 한씨는 물을 그리는 화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멀리서 바라본 물의 풍경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물속의 풍경을 그린다. 2009년 홍익대 미술대학원 동양화과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 주제도 ‘동양회화에 나타난 물 표정 연구’였다.

이번 전시에는 한지에 수묵담채로 물속 풍경을 그린 작품 24점을 걸었다. 가까운 바다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오래도록 들여다본 풍경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말처럼 부드럽고 은은한 색조로 담아낸 물속 정원은 사랑스럽고 예쁘다. 물 아래 잠긴 돌과 군락을 이루고 사는 따개비며 조개류, 굴·미역을 비롯한 해초류, 산호초, 군소 등 다양한 생명이 ‘따로 또 같이’ 하나의 세상을 이루고 있다.

이런 풍경들을 보며 한씨는 균형과 조화, 여유와 생명의 환희를 읽어낸다. 물속 생명들과 대화를 나누는 한씨의 맑고 따뜻한 마음은 그림 제목에 잘 나타나 있다. 푸른 꿈, 물의 대화, 물고기 학당, 정다운 시간들, 균형 있는 삶, 일상의 여유…. 물위에 뜬 빨간 단풍잎 두 장을 향해 모여드는 산천어들을 담은 그림에는 ‘안식처’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씨가 물속 풍경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2010년부터다. 그는 “이전에는 산수화도 그렸지만 우리나라 연안 바닷가나 계곡을 자주 찾으면서 거기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명체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물속에도 계절이 있어요. 봄에는 막 피어나는 아주 작은 수초 사이로 먹거리와 나들이에 관심 많은 생물들이 서로를 탐색하고 기웃거리죠. 여름이 되면 수초도 크고 생물 역시 크기 시작하고요. 썰물 때 물이 무릎 높이까지 빠지고 나면 드러나는 파릇파릇한 해초와 주변의 생명체를 보면 얼마나 예쁜지….”

한씨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는 5월 말~6월 초다. 물속에 발을 담근 채 스케치하고 사진도 찍는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찾는 건 흔한 일인데, 하나의 작품을 위해 열두세 번이나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반면 계곡의 물은 가을이 백미다. 한씨는 “가을에는 하늘도, 물도 투명해서 오방색으로 말하자면 투명한 흰색”이라고 했다.

한씨는 지금도 날마다 1000배의 절을 하는 화가이자 수행자이다. 갓 돌이 지났을 때 앓았던 뇌성마비로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일곱 살 때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만났다. 휘청거리는 몸으로 사흘에 걸쳐 3000배를 한 직후였다. “하루 1000배씩 하면 오래 산다”는 스님의 말대로 매일 절을 한 결과 굳고 비틀렸던 몸이 풀리고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2009년엔 자신의 절수행 체험기를 《오체투지》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그림 자체보다 ‘장애를 극복한 화가’라는 수식어가 앞서는 게 탐탁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는 한씨. 이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표정이다. 그동안 가나아트스페이스, 인사아트스페이스 등에서 10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35차례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의 올해 첫 전시 공모에 당선돼 지난 2월 주리아, 조연경 작가 등과 함께 ‘당선 작가전’에 참여했고, 곧이어 유럽미술의 정통 공모전인 ‘프랑스 르 살롱’에도 선정돼 파리에서 전시회를 했다. 잔잔한 물속 풍경을 보며 명상을 하듯 평화와 안식을 얻었다는 평이 이어졌다. 오는 8월에는 서울, 광주, 목포에서 ‘현대미술 한일전’을 연다.

한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힘들고 위축된 때에 물속의 작은 생명들도 저마다 삶을 누리는 걸 보면서 사람들이 의지와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8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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