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릭텔 '우아한 방어' 번역 출간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 맷 릭텔이 쓴 '우아한 방어(원제 An Elegant Defence: The Extraordinary New Science of the Immune System - A tale in Four Lives·북라이프)'는 20세기 이후 연구의 급진전으로 속속 드러난 인간 면역계의 놀라운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솜씨 있게 엮은 책이다.

책 제목은 면역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면역계가 박테리아, 바이러스, 기생충, 암 등을 물리치는 과정은 전쟁에 비유하기 쉽지만, 저자는 이는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몸은 원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파티이자 축제의 장이며, 우연히 나타난 온갖 생명체가 함께 흘러들어온다.

면역계가 하는 일은 혹시 말썽꾼이 나타나지 않을까 주시하며 순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좀도둑이나 강도, 테러리스트, 그밖에 정체 모를 괴한 등 우리 몸에 해가 되는 것들이 발견되면 최대한 다른 세포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그 악의 무리를 몰아낸다.

적군이라고 해서 화력을 잘못 쏟아붓다가는 자신의 조직이 다치기도 하거니와 장에 사는 수십억 마리의 박테리아처럼 우리 몸에는 함께 살아야 할 우군들도 많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그 무엇보다 화합을 바라는 평화유지군'이라고 면역계를 규정한다.

우리 면역계는 화합을 바라는 평화유지군
책은 1950~60년대 생쥐 실험을 통해 면역 일선에서 장군과 병사의 역할을 하는 T세포와 B세포의 존재가 밝혀진 이래 현대 면역학이 이룬 성과들을 재미있고 전문성 있게 설명한다.

틈틈이 기념비적 연구 업적을 이룬 과학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과 그들이 쓴 의학 논문, 보고서를 요약해 소개한다.

당연히 비전문가로서는 소화하기 벅찬 내용이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그때마다 저자는 "이 정도 수준의 지식만 있다면 면역학 학사 학위 정도는 받을 수 있다"거나 "힘을 내자…어렵지만"이라고 격려하며 독자들을 끌고 간다.

저자는 자크 밀러, 맥스 쿠퍼, 도네가와 스스무, 피터 메더워, 레이 오언, 피터 도허티 등 탁월한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와 이를 가능케 한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면역학의 발전 과정을 안내한다.

그리고 면역계가 1선뿐만 아니라 2선의 방어체계도 구축하고 있으며 다수의 중복되는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설명한다.

우리 몸에 위협이 되는 침입군의 다양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2중, 3중의 방어망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몸에 들어온 것이 물리쳐야 할 병원균인지, 아니면 방금 삼킨 바나나처럼 무사통과 대상인지를 가리는 '톨 유사수용체'의 존재 등 비교적 최신의 연구 성과도 알려준다.

인류가 '집단지성'을 동원해 만들어온 바람직한 생활습관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미국 아미시파와 후터파의 생활 방식을 비교한 대목도 흥미롭다.

아미시파와 후터파는 종교적인 이유로 대대손손 고립된 생활을 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아미시파가 전통적인 농법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후터파는 고도로 산업화한 공동체 농장을 운영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연구 결과 아미시파의 집은 고양이나 개, 집먼지, 진드기, 바퀴벌레 등 항원투성이였으나 이곳 사람들의 면역력은 더 강했다.

아미시파의 아이들은 거의 알레르기가 없었다.

이는 '너무 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 알레르기성 질환이 늘어나고 면역력은 더욱 약해졌다는 속설과 일치한다.

저자는 이처럼 면역에 관한 상당히 전문적인 배경 설명에 이어 면역학의 발전에 크게 좌우된 네 사람의 인생 궤적을 추적한다.

그 중 저자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고교 농구부 스타 출신 제이슨 그린스타인은 2010년 호지킨병 진단을 받았다.

면역세포가 모여있는 림프종에 악성종양, 즉 암이 생기는 병이다.

위에 나오는 B세포들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악성종양이 된다.

병원균에 맞서야 할 군대가 오히려 '반란군'이 된 셈이다.

우리 면역계는 화합을 바라는 평화유지군
암세포뿐 아니라 신체까지 파괴하는 화학요법에도 차도가 없었던 제이슨은 기존 면역기능을 파괴하고 줄기세포를 주입하는 새 치료법을 적용받게 된다.

그러고도 재발 우려가 높은 것으로 예상되자 그는 브렌툭시맙이라는 신약 임상시험에 지원하기로 한다.

호지킨병이 있는 B세포가 발현하는 항원을 찾아 공격하는 약이다.

이런 노력은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면 몇 달밖에 살지 못했을 제이슨은 브렌툭시맙 복용 이후 상태가 호전됐고 2년 뒤에는 완치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른다.

그러나 모진 암은 재발했고 제이슨은 끔찍한 화학요법을 다시 받지 않으면 여섯달 정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제이슨은 포기와 치료 결심을 반복하다 최신 면역치료제 니볼루맙에 마지막 희망을 걸기로 한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종양이 사라진 것이다.

제이슨은 "의사로부터 살아날 확률은 1천200만분의 1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저자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몇 달 뒤 눈을 치우느라 다친 허리의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병원을 찾은 그는 재발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진짜로 마지막이었다.

제이슨은 처음 호지킨병으로 진단받은 지 5년이 되는 2015년 여자친구와 저자, 저자의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밥 호프는 워싱턴의 변호사로 "전국 목욕탕이란 목욕탕은 다 찾아다녔다"고 할 정도로 난잡한 성생활에 탐닉하던 동성애자였다.

밥은 1984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양성 진단을 받았다.

당시에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밥의 성행위 상대 등 수많은 친구가 먼저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그는 지금껏 살아있다.

의사들은 밥처럼 HIV를 통제할 수 있는 환자들을 '엘리트 통제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의 생존 이유를 규명하게 되면 에이즈 극복의 단서를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밥이 앓았던 에이즈는 HIV가 T세포를 공격해 사멸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증후군이다.

병원균과 싸우는 군대인 T세포 가운데는 '장군' 역할의 CD4와 '병사' 역할의 CD8 세포가 있는데 HIV는 영악하게도 CD4만 공격한다.

장수를 잃은 병사들이 아무 쓸모 없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면역계는 화합을 바라는 평화유지군
저자의 주장대로 어려운 대목이 나오더라도 참고 고비를 견뎌 끝까지 읽어내면 '면역학' 학사 학위에 필적하는 지식을 얻게 될 수 있을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건너뛰더라도 자기 몸을 파괴하는 면역 질환과 싸우는 환자들의 고군분투와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기쁘게 마무리되는 그들의 인생 이야기, 또 저자가 '아르고 원정대'라고 부른 면역학 연구의 선도자들이 진실을 찾기 위해 거쳐 간 여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다.

홍경탁 옮김. 504쪽. 2만원.
우리 면역계는 화합을 바라는 평화유지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