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자 니컬러스 머니, 책 '이기적 유인원'서 일갈

1758년 식물학자 칼 린네는 현생인류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을 붙였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우리 인간은 특별히 설계됐으며, 다른 어느 생명체보다 많은 특권을 받았다고 믿었다.

이 또한 분에 넘치는 자화자찬일까? 우리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했다.

지구상 어떤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하며 인류의 과학적 성취가 더 밝은 미래를 만든다는 고정관념을 강화해나갔다.

그러더니 오늘날에는 신과 같은 권력을 지녔다고 해 감히 '호모 데우스'로 여기기까지 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간의 진화, 종착지는 소멸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간의 진화, 종착지는 소멸이다"
이에 강력히 반기를 드는 학자가 있다.

미국의 생물학자 니컬러스 머니다.

마이애미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그는 현생인류를 '호모 나르키소스'로 새롭게 정의한다.

자아도취에 빠진 인간이라는 뜻이다.

머니 교수는 저서 '이기적 유인원'에서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호모 나르키소스. 그는 지구 생물권을 완전히 파괴해 자신을 멸종의 길로 몰아넣는 아프리카 출신 유인원의 한 종이다.

지구 온난화로 지구는 현재 암 말기 환자와 같은 상태에 놓였다.

"
우리 인간이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호모 사피엔스인가? 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당혹스러운 결과를 발표했다.

인간에게 10만 개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알고 보니 미개한 선충 유전자 수와 별 차이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오만한 이름표를 바꿔야 한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런 관점은 지나친 자기 비하이자 학대가 아닐까? 저자는 21세기 들어 인류의 집단 지성은 바닥나고, 전 세계인이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어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이름은 어불성설이라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인류는 지구의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고대 바다의 해면동물에서 태동했다.

심지어 유전학적으로는 버섯과도 별 차이가 없다.

그런 직립보행 현생인류가 이기심을 근간으로 자기 진화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터전인 지구를 통째로 파괴하며 자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사스와 메르스, 에볼라에 이어 지금 지구촌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는 코로나19도 이런 인류 재앙의 전조 증상 중 하나일지 모른다.

저자는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지구 환경을 과다하게 바꾸고 부수는 바람에 멸망 시점을 앞당겼다고 주장한다.

그 전조 현상들은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나타난다.

오존층이 뚫리는 바람에 지구는 빠르게 더워지고, 산성화한 바닷물은 플라스틱으로 뒤덮이고 있다.

산업 활동으로 공기가 오염되고, 멈추지 않는 삼림벌채로 사막화 현상이 일어나 초원과 호수가 줄어든다.

식물 종은 날로 멸종하고, 생태계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생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갖 수난을 당한다.

이에 머잖아 인간 또한 전멸할 것이다.

섬뜩한 주장들이 아닐 수 없으나 인간의 명백한 자업자득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그저 우아하게 사라지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말한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허무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저자가 책 말미에서 내놓은 결론이자 제언이다.

"아담과 이브는 예정된 길을 걸었다.

우리는 바꿀 수 없거나 바꿀 마음이 없는 항로를 따르고 있다.

하늘이 무너지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받는 다른 존재에게 더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
이 같은 자업자득의 위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자멸의 속도를 다소나마 늦추려면 인류가 지금껏 정신없이 매달리던 나르시시즘적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이름에 조금이나마 부합하는 존재가 돼달라는 간절한 당부이자 주문이다.

김주희 옮김. 한빛비즈. 220쪽. 1만7천원.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간의 진화, 종착지는 소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