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가을, 서울 성북동 전등사에 수도승(서울에 사는 스님)과 산승(산에 사는 스님)들이 모였다. 평소 주제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해서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자리의 좌장 격인 경북 문경 봉암사 수좌 적명(寂明·1939~2019) 스님이 몇 권의 책과 문서를 꺼냈다.

적명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의 각묵 스님이 번역한 '청정도론'을 탐독했다"며 책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50여쪽의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번역된 '청정도론'은 5세기 겨우 인도의 붓다고사 스님이 남방불교의 경·율·론 삼장에 대해 해설한 책으로 번역서는 세 권, 1500쪽 분량이다.
"수행자의 가슴은 천 개의 칼, 만 개의 얼음"…적명 스님 유고집 '수좌 적명' 출간
적명 스님은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이 번역한 '청정도론'을 읽고 나니 수행하면서 평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이 풀리고 석연치 않은 점도 확연해졌다"며 자리를 함께한 각묵 스님에게 사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제가 '청정도론'을 읽어가면서 북방의 간화선과 남방의 위빠사나 선수행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몇 가지로 정리했으니 맞는지 알려달라"고 각묵 스님에게 요청했다.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선 수행자를 지도하는 봉암사의 수좌 스님이 절집 서열로 제자뻘인 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한 것이다. 배움을 위해서라면 아랫사람에게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을 수 있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자세에 그날 참석자들은 밤을 세워 묻고 답하며 공부했다고 법인 스님(남원 실상사 한주)은 전했다.
지난해 12월 24일 적명 스님이 산행 도중 불의의 실족 사고로 입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절집 안팎의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 것은 그의 이런 면모 때문이다. 평생을 선방과 토굴에서 수행했던 적명 스님은 후배 스님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스승인 양, 어른인 양 하는 걸을 싫어했다. 선방의 최고 어른인 조실(祖室) 자리도 마다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법문도 하지 않았고, 흔한 책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런 적명 스님의 흔적이 책으로 나왔다. 입적 후 발견된 일기와 소모임에서 했던 말씀 등을 정리한 <수좌 적명>(불광출판사 펴냄)이다. 1980년부터 2008년까지의 일기 중 70편의 글을 추렸다. 남들에게는 한없이 겸손하면서도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했던, 오직 구도자로 살았던 적명 스님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들이다.

"일상생활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대력보살이다.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고 겸손하고 공정하며 양식 있는 언행을 잃지 않는 자, 수행인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 세파의 물결에 부딪힐수록 오히려 더욱 굳세어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수행인이라 이를 것이다."(1981년 1월 10일)
"수행자의 가슴은 천 개의 칼, 만 개의 얼음"…적명 스님 유고집 '수좌 적명' 출간
50대 중반이던 1996년 7월의 일기에서는 수행의 더딘 진전에 답답함을 드러내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공부, 갑갑해 죽겠다. 어디라고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이젠 영 안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일면 가장 절망스럽고 고통스럽다.(중략) 온 세상이 나무라도, 경멸하고 박해를 가해도, 적명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쓰러지고 부서지고, 차라리 미칠지언정 스스로 그만두지는 못할 것이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진전이 도무지 없을지라도!"

절집에서의 연륜이 쌓이면서는 스스로에 대한 경계도 놓지 않는다. "스승 연, 어른 연 하는 마음을 경계함이 좋겠다. 나이 많고 승랍과 선방 경력의 많음으로 해서 젊은 수좌들은 혹은 깍듯하게 대함이 있지만, 그것은 연장자, 단순한 선배라는 의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선배가 선배답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길지언정, 어른 연 해서 아는 체하고 가르칠 바가 있는 양 스스로 착각하는 것은 꼴불견에 속한다."(1998년 11월 10일)

2000년 7월의 일기에서는 해이해진 선방의 수행 풍토를 자성하며 이렇게 지적했다. "하루 열두 번 참회하고 부족하고 백 번을 새롭게 다짐해도 오히려 모자란다. 수좌의 마음 속에 안이함이 자리해서는 안 된다.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는 자긍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수좌의 가슴은 천 개의 칼이요, 만 개의 얼음이어야 한다."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낸 무비 스님은 책 서문에서 이렇게 적명 스님을 추모했다. "화상은 그렇게 적멸에 들어버리고 나는 화상이 버리고 간 일기와 한담들을 뒤적거리면서 남겨진 향기를 음미합니다. 매화는 일생 동안 추위에 떨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더니 그 향기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달그락달그락 바람 일 듯 염송(念誦)이 산사를 툭 치고 갑니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사진=불광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