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미경을 모델로 내세운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몬’ 광고.  알바몬 제공
가수 박미경을 모델로 내세운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몬’ 광고. 알바몬 제공
“완전 매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아르바이트 사이트 ‘알바몬’ 광고에서 가수 박미경이 빠르게 매대를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보며 이런 말을 한다. 열심히 칭찬하긴 하는데 왠지 어색하다. 국어책을 읽는 느낌이랄까. 이 광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다. 딱딱한 느낌의 멘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20대를 주요 타깃으로 하는 광고에 1990~2000년대 주로 활동한 가수를 왜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10~20대 사이에선 크게 화제를 모으고 있는 광고다. 유튜브 조회 수도 공개 1주일 만에 200만 뷰를 넘어섰다. 이들은 이 광고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미경은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선배 무대에 감동을 받고도 카메라 울렁증 탓에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고 어색하게 말했다. 해당 장면은 유튜브를 통해 10~20대 사이에서 ‘박미경 국어책 리액션’으로 회자돼 많은 인기를 얻었다.

또 재밌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30여 년간 볼 수 없었던 가수 양준일을 다시 무대에 세운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3’. 이 프로그램에선 양준일을 공개하기 전 방청객들에게 힌트를 주며 그가 누구일지 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다수의 10대가 정답을 맞혔다. 1993년 ‘세상은 요지경’을 부른 배우 겸 가수 신신애가 같은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때도 힌트를 들은 10대들은 그가 누군지 맞혔다. 심지어 노래도 열심히 따라 불렀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한 가수들을 이토록 잘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10~20대가 과거 가수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 독특한 현상을 단순히 ‘복고’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어릴 때 즐긴 문화를 다시 추억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10~20대들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해 과거 콘텐츠를 발굴하고 있다. 콘텐츠 ‘노다지’를 만난 것처럼 마음껏 채굴하고, 나아가 가공까지 해낸다. 방송사, 기업 등은 이런 흐름을 적극 활용한다. 서서히 잊혀져 가던 과거 문화는 그렇게 제대로 놀 줄 아는 세대를 만나 현재의 문화계 주류로 재탄생하고 있다.

‘Z세대’라고 불리는 10~20대는 스스로 팬덤의 주역이 되는 것에 익숙하다. 콘텐츠를 즐기거나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콘텐츠를 이용하는 방식도 이전 세대에 비해 진화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를 접한 덕분에 콘텐츠 이용에 능숙하다.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원하는 대로 검색하고 발굴한다.

나아가 일종의 ‘놀이’로 만들어낸다. 유튜브와 SNS에서 재밌는 댓글과 태그를 걸어 콘텐츠를 재확산한다. 과거 인기 가수를 현재 인기 가수와 연결해 별명을 붙여주는 게 대표적이다. 이정현은 레이디 가가에 빗대 ‘조선의 레이디가가’로 부른다. 백지영과 손호영은 각각 청하와 강다니엘과 닮았다는 의미로 ‘탑골 청하’, ‘호다니엘’이라고 칭한다.

10~20대가 과거 콘텐츠에 열광하는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어디서 본듯 비슷하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일 때가 많다. 반면 과거 콘텐츠들은 어딘가 어색해 보여도 순수하고 신선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흐름은 문화계, 나아가 소비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방송사와 기업들은 10~20대를 사로잡기 위해 과거 인물들을 발탁하고 있다. 음악 채널 Mnet은 1990~2000년대 활동한 국내 1세대 래퍼들이 경연을 벌이는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오는 28일부터 방영한다. 롯데홈쇼핑 한국피자헛 등은 양준일을, 롯데칠성은 이선희를 모델로 내세웠다.

앞으로 더 재밌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제각각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던 부모와 아이가 함께 TV를 보며 같은 가수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것이다. 사라진 ‘안방극장’이 10~20대로 인해 되살아날 수 있을지 작은 기대가 싹튼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