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9일 롯데콘서트홀서 15년 만에 내한 연주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62)의 이력은 독특하다.

특이한 연주로 쇼팽콩쿠르 심사위원들 사이에 찬반을 불러일으켜 그중 일부(마르타 아르헤리치 등)가 사퇴하는 논란을 일으켰고,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알리자 케제랏제)과 결혼했으며, 그녀의 죽음과 함께 한때 음악 현장을 떠나있기도 했다.

그는 녹음 작업을 잘 하지 않는 은둔형 연주자이기도 했다.

그의 연주는 템포 설정과 터치 등에서 '자의적 해석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할 만큼 극과 극을 오갔다.

때로는 "200년이나 앞선 연주"(뉴욕타임스),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호평을 얻었지만, 극단적인 스타일 탓에 이와 상반된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 쇼팽 콩쿠르 데뷔 후 기행과 탁월한 연주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아온 포고렐리치가 다음 달 1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2005년 이후 15년 만의 내한 연주다.

그는 내한 연주회에서 바흐의 '영국 모음곡 3번',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11번', 쇼팽의 '뱃노래&전주곡',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를 선보인다.

특히 '밤의 가스파르'와 쇼팽의 '뱃노래' 등은 그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내한 공연에 앞서 7일 그를 이메일로 미리 만나봤다.

포고렐리치 "피아노는 저에게 자유로움을 안겨주죠"
"이번 프로그램을 들어보시면 저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과거의 제 모습에 익숙한 분들은 세월과 함께 진화한 부분들을 찾아내실 거예요.

제 이름과 연주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젊은 관객들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저의 음악 세계만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만나 보실 수 있길 기대합니다.

"
포고렐리치는 무려 24년 만인 지난해 음반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2번 F장조' '24번 F#장조'가 수록된 새로운 음반을 냈다.

내달 있는 서울 연주회도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아시아 투어의 일환이다.

"이 작품들은 제가 오랫동안 매력을 느꼈던 곡들입니다.

몇 곡은 공연에서도 자주 연주하곤 했죠. 예를 들어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는 제 인생 절반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연주했거든요.

지난 30여년간 언제든지 녹음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이제야 음반으로 만나게 되었네요.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 있어서 개인적인 공헌을 남기고 싶었어요.

베토벤의 소나타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피아노 레퍼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한 곡은 베토벤이 가장 좋아한 피아노 소나타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죠(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 높은 수준의 순수예술에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첫눈에 보기 쉽고 간단해 보이면 오히려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요! 그 사실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
그는 스승이자 아내였던 케제랏제에 대해선 "그녀보다 더 나은 피아니스트를 들은 적도, 알게 된 적도 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진짜 천재는 제 옆에 있는 아내였죠. 아내와 저는 함께 키울 아이가 있었던 가족이었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내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은 제가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죠."
포고렐리치 "피아노는 저에게 자유로움을 안겨주죠"
그러나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아내가 1996년 죽고, 설상가상으로 2000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포고렐레치는 불안과 우울증이 악화해 연주 활동을 1년여간 중단했다.

이후 연주를 재개했지만 이전만큼 연주 활동을 활발하게 하진 않았다.

그렇게 그의 피아노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두 사람이 세상을 뜬 지 어언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한때 수려한 외모와 기행 탓에 팝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지만, 어느 사이 젊음은 그를 떠났고, 이제 그도 황혼에 접어들었다.

음악 세계도 그의 외모만큼이나 커다란 변화가 생겼을까.

"크게 변한 점은 없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습니다.

제게 음악은 항상 똑같이 중요했거든요.

음악이란 각자가 바라보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 발견되고 또 변화해요.

어떤 조각들은 변하지 않기도 하죠. 제가 그 조각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할 때가 있고 때론 그대로 있기도 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7세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려 55년간 거의 쉼 없이 피아노를 만져온 셈이다.

그런 그에게 피아노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피아노는 제 삶에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저에게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해주죠. 그건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자유로움이에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