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내한공연 "신동들은 조급함 피하고 나만의 시간 가져야"

장한나(37)는 한마디로 첼로 신동이었다.

11세 때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를 최연소로 우승한 그는 전설적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어린 시절 활 잡는 법을 배웠고, 현존하는 최고의 연주자 중 한 명인 미샤 마에스키를 사사했다.

하지만 신동에서 알을 깨고, 괄목할 만한 성인 연주자로 성장하기는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 테크닉에 방점이 주어진다면 거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음악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알을 깨는 '성장통'은 힘들었지만 그는 결국 저명한 첼리스트 반열에 올랐다.

그런 성공한 첼리스트였던 장한나가 변신을 꾀했다.

여성 '마에스트로'로 인생 2막을 열어젖힌 것이다.

장한나는 2007년 국내에서 연합 청소년관현악단을 지휘하며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다.

2017년 8월부터는 노르웨이 트론헤임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장하나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첼로는 연주할 수 있는 레파토리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에 비해 많지 않다"며 "시야를 넓히기 위해 교향곡을 공부했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지휘에 매력을 느껴 지휘 공부를 시작했다.

지휘로 건너가는 건 제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했다.

장한나 "음악가는 시간이 친구…자연 닮은 음악하고파"
장한나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트론헤임심포니오케스트라와 내한공연을 한다.

5년 만의 내한공연이며 해외 오케스트라를 끌고 내한하는 첫 연주회다.

장하나는 "올해는 한-노르웨이 수교 60주년이자, 저의 데뷔 25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국내에서 연주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장한나와 트론헤임심포니는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전북 익산을 찾아 클래식 팬들과 만난다.

내한 연주에서는 임동혁과 협연하는 그리그 피아노협주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선보인다.

트론헤임심포니는 노르웨이 제3의 도시 트론헤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악단이다.

1909년 창단했으니 올해로 정확히 창단 110년을 맞았다.

현재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 중이고, 내년 베토벤 250주년을 기념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에도 도전한다.

그는 지휘자로서 삶은 쉽진 않지만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하루 4시간 30분에 이르는 빡빡한 연주,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치열한 '소통'이 끝나고 귀가하면 그로기 상태가 된다고 한다.

매일매일 '전투'가 반복되는 바쁜 삶이지만 이런 삶이 하루하루 쌓이면 언제가 마음에 드는 훌륭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연주자나 지휘자의 목표는 연주할 때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음악에 깊이 빠지는 겁니다.

자신을 잊는, 혹은 불태우는 그런 연주를 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 날 기진맥진하죠. 그래도 계속 연습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
그가 이처럼 열심히 음악을 연구하는 건 청중에게 다양한 소리를 전해주기 위해서다.

지루하고, 고루한 클래식 음악이라는 '클리쉐'가 시장에 팽배하게 된 건 일정 부분 음악가의 책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는 소리를 만드는 작업을 해요.

소리는 너무나 다양하죠. 내가 만든 소리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게 만드는가가 저희가 하는 고민입니다.

생동감 있는 음악으로 청중과 깊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장한나 "음악가는 시간이 친구…자연 닮은 음악하고파"
그는 미샤 마에스키의 유일한 제자다.

첼로를 연주할 때는 그와 협연할 일이 없었지만 지휘를 하면서는 마에스키와 3차례 협연했다.

내년 5월에도 협연이 예정돼 있다.

장한나는 대부분 마에스키 말을 수용하지만 가끔은 의견이 다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는 "선생님이 워낙 '오픈 마인드'여서 제 의견을 대부분 수용해주신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대학(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독서를 멈추지 않는 다독가로 잘 알려졌다.

어린 시절에 많은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책보다 자연에 더욱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자연의 독특한 어우러짐은 저에게 끝없는 영감을 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래요.

단풍은 나뭇잎마다 다르죠. 그런데 그런 나뭇잎의 어우러짐은 끝없는 색의 변화를 낳아요.

그러다 봄이 오면 자연은 또 변하죠. 이렇게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깊이를 자연은 전해줍니다.

거기서 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
그는 언젠가 자연을 닮은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모든 예술가가 느끼는 꿈의 경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선 하루하루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신동들에게 혹시 조언할 게 있는지 물어보자 바로 그런 '꾸준함'을 주문했다.

"제가 어렸을 때, 저를 가르쳐주신 스승님들의 음악에 대한 태도와 제 경험을 종합해서 말씀드린다면, 운동선수와는 달리, 음악가는 시간이 친구입니다.

음악은 누군가와 경쟁하는 게 아니죠. 음악가에 대한 평판은 훨씬 나중에 나옵니다.

오늘 연주가 어떻게 평가받았는지 조급해할 필요가 없죠. 나의 전성기는 늘 내일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더불어, 준비하고 시간을 투자하라고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음악가가 되는 길은 과정이 길어요.

꿈을 놓지 않는다면, 매일 열심히 한다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로스트로포비치, 마에스키 선생님의 공통점이 있다면 본인들이 절대 대가라고 생각하지 않은 점입니다.

늘 오늘 첼로를 시작한 사람 같은 초심을 가지고 연주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자세를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