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백운동 별서원림

월출산 옥판봉 남쪽 발치에 숨겨진 듯한 계곡, 그곳 그윽한 동백숲 안쪽에는 고색창연한 집이 한 채 들어서 있다.

조선 중기에 처사 이담로가 조영한 후 13대째 대를 이어 지켜온 백운동 별서원림이다.

아름답게 꾸며진 이곳은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 3대 별서원림으로 꼽힌다.

수많은 문인이 100편도 넘는 시로 이곳의 풍치를 노래했다.

[문화유산] 다산(茶山)도 반한 은자(隱者)의 숲속 별장
"임신년(1812) 가을, 다산에서 백운동으로 놀러 갔다가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남은 미련이 오래 지나도 가시지 않기에 승려 의순을 시켜 '백운도'를 그리게 하고 이를 이어 12승사(勝事)의 시를 지어서 주었다.

끝에 '다산도'를 붙여서 우열을 보인다.

9월 22일"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백운첩'(白雲帖) 발문에 적은 글이다.

'백운첩'은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이 1812년 9월 12일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에 갔다가 하룻밤 묵은 백운동 별서원림의 12승경을 노래한 시(詩)를 묶은 시첩이다.

다산은 동행한 초의(의순)에게 '백운동도'와 '다산도'를 그리게 한 후 함께 실었다.

백운동 별서원림은 원주 이씨 처사 이담로(1627∼?)가 중년에 조영해 은거한 공간으로 알려졌다.

별서(別墅)는 살림집(본가)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경치가 좋은 곳에 있는 별장을 말하고, 원림(園林)은 집터에 딸린 숲으로 정원을 뜻한다.

[문화유산] 다산(茶山)도 반한 은자(隱者)의 숲속 별장
신영호 문화해설사는 "이곳은 이담로가 과거급제의 꿈을 이루지 못하자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은거하기 위해 지은 공간"이라며 "이담로는 인근 성전면 금당리에 살림집을 두고 이곳에 자연과 함께하는 치유의 별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담로는 백운동 별서를 조영한 후 20년간 손자 이언길과 함께 힘써 가꾸고 각별히 아꼈다.

얼마나 애착이 컸던지 손자에게 이곳을 절대 남에게 팔아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간곡하게 말하고 나서야 별서를 넘겨줄 정도였다.

별서였던 백운동 원림은 1756년 이언길이 식구들을 데리고 들어와 살면서 살림집이 됐다.

백운동 계곡의 빼어난 경치는 이담로 이전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담로보다 약 100년 전 광해군 때 인물인 해암 김응정은 계곡 옆에 '신선이 머무는 곳'이란 뜻의 정선대(停仙臺)를 짓고 계곡의 아름다움을 시로 읊었고, 인근 마을 이후백이란 사람은 정선대의 비경을 노래했다.

고려 시대 이 계곡에는 백운암이란 암자도 있었다.

이후 다산, 초의, 소치, 김창흡, 김창집, 신명규, 임영 등 수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 풍치를 시에 담았다.

다산이 차마 잊지 못한 백운동 원림은 지난 3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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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늘 짙은 동백숲과 맑은 계곡이 품은 가경들
백운동 별서원림은 월출산 옥판봉이 바라보이는 성전면 월하리에 들어서 있다.

연초록 차밭이 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너른 들판 가운데 숨은 듯 자리한다.

이정표가 없다면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버릴지 모를 정도로 숨어 있다.

백운동 별서원림 진입로는 월출산 다원주차장과 안운주차장 두 곳이다.

별서 북쪽 언덕 위에 있는 월출산 다원주차장이 찾기 쉽고 넓지만 언덕 아래에 있는 안운주차장으로 가는 것이 더 좋다.

별서의 정문이 그쪽에 있고, 다산이 노래한 백운동 12경과 별서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정갈한 돌담길을 따라 완만한 비탈을 오르면 둥치 굵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숲이 울창해서인지 한낮 태양 아래 있다 들어선 탓인지 그늘이 한가득하다.

이내 동화 속 같은 동백숲이 눈 앞에 펼쳐진다.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오고 숲을 지나는 바람은 땀을 씻어준다.

다산이 제2경으로 꼽은 산다경(山茶徑)의 유차성음(油茶成陰, 동백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길)이다.

'산다'와 '유차'는 모두 동백나무의 별칭이다.

다산은 "언덕을 끼고 심은 동백나무가/ 이제는 길 가득 그늘 만드네/ 가지마다 꽃 보숭이 맺혀 있으니/ 세한(歲寒)의 마음을 남겨둔 걸세"라고 노래했다.

매년 이른 봄 이곳에는 붉은 동백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푸른 동백나무가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을 뒤덮은 모습이 꽤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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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숲길이 끝나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기 전 뒤편 큰 바위에는 이담로가 쓴 '白雲洞'(백운동)이 새겨져 있다.

다리 아래로 계곡물이 커다란 바위 무더기를 타고 넘어 소(沼)로 떨어져 내리는 풍경은 제4경 홍옥폭(紅玉瀑)의 풍리홍폭(楓裏紅瀑)이다.

가을이 깊어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면 그 빛이 홍옥폭포에 어려 붉은 옥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다리를 건너면 큰 칼로 삭둑 잘라낸 듯한 커다란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제6경 창하벽(蒼霞壁)의 창벽염주(蒼壁染朱, 붉은색 글씨가 있는 푸른 절벽)다.

창하벽은 푸른빛 절벽을 뜻한다.

다산이 붉은 글씨로 '蒼霞壁'을 써놓고 왔다는데 지금 절벽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창하벽 위는 제10경 풍단(楓壇, 단풍나무를 심은 단)의 홍라보장(紅羅步障)이다.

비단 휘장을 둘러친 듯 붉게 물든 단풍나무라는 뜻이다.

다산은 "금곡의 번화한 숲 그 옛날에 심은 것/ 붉은 비단 가림막이 양편으로 열려 있네/ 냇가 임한 죽각은 어느 해에 부서졌나/ 그래도 서산에선 맑은 기운 밀려온다"라고 표현했다.

다산은 '아언각비'에서 백운동 단풍나무가 건물 기둥으로 쓸 정도로 키가 크고 굵었다고 언급했다.

별서 안팎에 있는 단풍나무를 보면 둥치가 꽤 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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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 즐기던 아홉 구비 물길
창하벽이 끝나는 곳에 별서 대문이 있다.

흔히 별서에는 담장과 대문이 없지만, 이언길이 들어와 주거하면서 일반 가옥처럼 담을 두르고 대문을 단 것으로 추정된다.

징검다리로 계곡을 건너면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맑은 초록빛 자연 속에 들어앉은 별서가 눈 앞에 펼쳐지는 예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풍광이 꽤 멋졌을 것 같다.

별서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에 있는 수로가 흥미롭다.

계곡에 흐르는 물을 끌어들여 만든 제5경 곡수유상(曲水流觴, 물굽이에 띄운 술잔)이다.

즉 술잔을 띄우고 노는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하던 곳이다.

수로는 대문 오른쪽 담장 아래로 물이 흘러와 사각형 연못(방지·方池)을 거쳐 다시 바깥으로 돌아나가도록 설계돼 있다.

수로는 바깥에서 두 번, 마당에서 다섯 번, 다시 계곡으로 가면서 두 번 등 총 아홉 번 꺾인다.

이른바 '유상구곡'(流觴九曲)이다.

두 연못을 끼고는 연꽃 핀 못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소박한 모습의 초정(草亭)이 복원돼 있고, 두 번째 연못가 넓은 바위에는 다산이 유상곡수에 관해 쓴 시가 음각돼 있다.

유상곡수는 중국 동진(東晉)의 서예가 왕희지가 삼월삼짇날 난정(蘭亭)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난정 둘레로 물길이 돌아 나가는 곳마다 사람이 앉아 흐르는 물에 띄운 술잔을 받아 마셨던 것에서 유래한다.

이재연 강진군 학예연구사는 "경주 포석정과 창덕궁 후원에 있는 옥류천이 바로 유상곡수를 즐긴 공간인데 민가 정원에서 유상곡수의 자취가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된 곳은 백운동이 유일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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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남쪽으로 난 쪽문을 나서면 정자가 있는 낮은 언덕으로 돌계단이 이어진다.

해암 김응정이 조성한 정선대다.

이곳은 제11경으로 다산은 이곳을 선대봉출(仙臺峰出)이라 표현했다.

신선이 쉬어가던 정자에 오르면 옥판봉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정선대에서는 별서 마당과 대문, 사랑채인 취미선방도 내려다보인다.

정선대에 가까이 가자 나뭇가지 사이로 옥판봉이 건너다보인다.

다산이 최고로 꼽은 경치인 제1경 옥판상기(玉版爽氣,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다.

다산은 "빙 둘러선 봉오리 고운 빛깔이/ 목을 길게 빼고서 나를 보는 듯/ 뭇 신선 티끌 먼지 깨끗이 씻고/ 단정하게 옥홀(玉笏)을 들고 섰는 듯/ 빼어난 기운 푸른 옥색 맑기도 하고/ 옅은 구름 맑은 그림자 머금었구나"라고 노래했다.

산등성이를 따라 솟아난 기암들이 마치 하늘을 향해 홀(笏, 임금 앞에서 조회할 때 품계에 따라 들고 있던 길쭉한 판)을 치켜든 것처럼 보인다.

정선대 뒤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제7경인 정유강의 유강홍린(소나무 언덕의 붉은 비늘)이다.

정유는 소나무를 말한다.

다산의 표현처럼 붉은 소나무의 껍질이 용의 비늘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원래 소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몇 해 전 두 그루가 말라 죽었다.

정선대 바로 아래에는 다산이 백운동을 찾았을 당시 별서의 주인인 이덕휘(1759∼1828)의 아들이자 이후 다산의 제자로 인연을 맺은 이시헌(1803∼1860)의 묘가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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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이 머문 선방과 싱그러운 대나무숲
다시 쪽문으로 들어서 마당을 가로지르면 왼편 화단 뒤 석축 위에 취미선방(翠微禪房, 산허리에 있는 선방)이 들어서 있다.

이 집은 제9경인 십홀선방(十笏禪房)이다.

홀 10개를 잇댄 정도로 작고 소박한 방이란 뜻이다.

초가지붕을 얹은 세 칸 규모 집으로, 다산이 하룻밤 머물렀던 곳으로 여겨진다.

다산은 제3경으로 백매오(百梅塢)의 백매암향(百梅暗香, 100그루 홍매화가 풍기는 그윽한 향기)을 꼽았다.

이담로가 별서를 조영할 때 둘레로 홍매화를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본채와 취미선방 인근에 몇 그루만 남아 있다.

취미선방 옆 계단을 오르면 본채로 이어진다.

계단 오른편으로는 3단의 축대를 쌓아 화단을 조성했는데 이곳에는 모란, 영산홍, 국화 등을 심었다.

이곳이 바로 제8경 모란체(모란 돌계단)의 화계모란(꽃 계단에 심은 모란의 빛깔)이다.

계단 끝 가장 높은 곳에는 기와를 얹은 본채가 복원돼 있다.

본채에는 '흰 구름에 그윽하게 깃들다'란 뜻의 '白雲幽居'(백운유거) 현판이 달려 있다.

본채 뒤 담장 사이 통로로 나와 언덕을 오르면 이담로와 부인 함풍 이씨가 나란히 잠들어 있다.

무덤 앞 상석에는 '白雲洞隱李公之墓'(백운동은이공지묘)가 새겨져 있다.

이담로의 호인 '백은동은'에서는 은거의 삶이 내비친다.

이담로는 중년에 이곳을 조영해 가꾸고 아끼고 사랑하다가 죽어서는 별서가 가장 잘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묘소 앞에 서자 별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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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별서에는 12대 동주(주인) 이승현 씨가 살고 있다.

백운동 별서원림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공간이다.

제12경 운당원의 운당천운은 대문 맞은편 담장 밖 대나무숲을 말한다.

운당은 왕대나무로, 다산은 구름까지 닿을 듯 하늘로 솟은 빽빽한 대숲을 마지막 절경으로 꼽았다.

담장 밖으로 대숲이 짙푸르다.

대숲 산책길로 접어들자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예전, 이 대숲에서 자생하는 차나무로 백운동의 떡차가 만들어졌다.

이시헌은 다산으로부터 구증구포(九蒸九曝,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다)를 줄인 삼증삼쇄(三蒸三灑)라는 독특한 제다법을 배워 차를 만들었다.

찻잎을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빻아 가루를 낸 후 돌샘물에 개어 짓찧어 반죽하고 작은 크기의 떡차로 만든 것이다.

이시헌은 다산이 귀양에서 풀린 뒤에도 차를 만들어 스승에게 보내곤 했다.

대숲 산책로는 별서 남쪽을 돌아 다시 별서원림 입구 계곡으로 이어진다.

백운계곡을 따라선 탐방로가 조성돼 있고, 주변으론 차밭이 펼쳐져 있다.

이재연 연구사는 "방문객들이 백운동 별서원림을 제대로 알고 돌아볼 수 있게 2021년 전시관을 개관하고, 차 문화의 산실인 백운동에서 차도 맛볼 수 있게 전시관에 찻집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유산] 다산(茶山)도 반한 은자(隱者)의 숲속 별장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