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국 배우 40명의 몸짓과 소리로 다가선 무대"
11개 국가에서 모인 40명의 배우가 한 무대에 오른다. 대사는 하나의 언어가 아니다. 영어부터 덴마크어, 루마니아어 등 배우들이 각자의 모국어로 대화한다. 그런데 자막과 해설도 없다. 관객은 온전히 이들의 몸짓과 소리에 기대어 느껴야 한다.

‘2019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참가작으로 3~5일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크로닉 라이프:만성적 인생’은 관객이 온전히 배우들의 몸짓과 소리에 기대어 느껴야 하는 무대다. 덴마크 출신인 연극계 거장 유제니오 바르바(사진)가 이끄는 오딘 극단의 작품으로 국내 초연한다. 바르바는 2일 서울 메이플레이스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냥 언어가 아니라 연극적 언어, 대사를 뛰어넘는 동작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작품”이라며 “55년 전엔 이런 시도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했는데 이젠 많은 사람이 우리로부터 큰 영감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르바는 1964년 국립연극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아 오딘 극단을 창단했다. 이후 덴마크 홀스테브로를 거점으로 한 지역 연극 공동체로 발전시켰다. 대부분의 단원이 40년 이상 함께하고 있다. 연극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연극인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바르바는 이들과 함께 기존의 연극 공식을 벗어난 작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연의 배경은 2031년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다. 경제적 위기를 맞이한 사람들이 유럽의 한 도시로 모여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르바는 “이 작품을 비롯해 그동안 오딘 극단이 선보인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과 사랑”이라며 “전쟁 이후에 남는 내면의 깊은 상처와 사랑 안에 늘 존재하는 뜨거운 불을 함께 그려낸다”고 설명했다.

관객은 좌석 위치에 따라 다른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출연 배우 줄리아 발리는 “객석이 무대 양옆에 있어 관객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며 “무대에서 수많은 사건이 발생하는데 어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며 “한국 관객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