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박병원 前 경총 회장의 이탈리아 돌로미티 트레킹 여행
파롤리아 산장에서 본 알프스 파노라마

파롤리아 산장에서 본 알프스 파노라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 꽃이 좋으면 마냥 머무르고, 작은 성당이 고즈넉하면 들어가 보기 위해 힘들지만 직접 운전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작은 마을 성당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부속 묘지가 꽃밭 수준이다.

알프스가 선물한 '야생화 천국'…자연 속 걷는 자, 자유를 느끼다

유럽에서 렌터카는 커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해발 2000m를 예사로 넘어다니는 이곳에서 배기량이 너무 작으면 오르막에서 다른 차들에 민폐가 될 수가 있다. 티롤 알프스의 남쪽에는 독일어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 도로 표지판에도 독일어를 필두로 여러 언어가 쓰인다. 예컨대 자이저 알름과 알페 디 시우시는 같은 곳이고, 오르티세이와 우르티제이, 상크트 울리히도 같은 곳이다. 금년부터는 월·수·금요일 사흘이지만 베네치아 직항이 생겨서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 일단 베네치아로 들어가 차를 빌리면 한국에서는 돌로미티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코르티나 담페초까지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파소 지아우 주변의 매력적인 초원

-파소 팔차레고, 라가주오이 산장


라가주오이의 알펜 로즈

라가주오이의 알펜 로즈

첫날. 파소 팔차레고로 가서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기에, 너무 멀리 가기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표고차 650m를 중간에 기둥 하나 없이 바로 솟구치는 케이블카는 무시무시하다. 고도가 너무 높아 꽃도 듬성듬성. 그리고 황량하다. 내려와서 보는 길 건너 풍경이 훨씬 좋다. 이 고갯마루에서 서쪽으로 파소 발파롤라, 동쪽으로 친퀘 토리까지 걷는 길이 여행자들이 흔히 걷는 길이다.

-코르티나 담페초, 파소 지아우

이튿날. 어제 간 길을 피해 파소 지아우 쪽 길을 따라 코르티나로 갔다. 콜레 산타 루치아 마을의 작은 성당에 들어가 본 것이 이 지역 마을 성당의 매력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중간에 있는 페다레 산장에서 아베라우 산장까지도 리프트가 운행하고 있었다. 파소 지아우 주변의 초원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중에 코르티나에서의 시간을 아껴 파소 지아우로 돌아와 걷게 된 것도 매력적인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체다의 장구채

세체다의 장구채

코르티나 북쪽으로 콜 드루시에를 거쳐 카판나 라 발레스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타러 갔는데 공사가 한창이었다. 결국 출발 역을 찾지 못했다. 대신 남쪽에 있는 팔로리아 산장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초원도 있고 꽃도 많았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더웠다. 어느 정도 올라가니 풀도 꽃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일찍 파소 지아우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장 뒤로 나 있는 길을 시간 되는 만큼 걸었다.

-마르몰라다, 파소 파돈

돌로미티 최고봉 3343m의 마르몰라다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아찔하다. 1472m의 말가 치아펠라에서 출발해 887m를 기둥 하나 없이 거의 수직으로 솟구쳐 올라간다. 2357m 코스톤 단테르모자에서 한 번 갈아탔다. 581m를 더 올라가 2940m 높이의 세라우타에서 다시 한 번 갈아타고 325m를 더 올라가면 해발 3265m의 푼타 로카다. 세라우타 부근에서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구름 속으로 케이블카가 빨려들었다. 백두산을 두 번 갔음에도 천지를 보지 못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얼마 가지 않아 쾌청한 정상이 나타났다. 구름 위로 올라간 것이다. 풀도 꽃도 없이 석회암과 빙하부터 시야에 들어오지만, 곧 페다이아 호수와 주변의 높은 봉우리들을 한 눈에 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말가 치아펠라와 마르몰라다 간의 케이블카

말가 치아펠라와 마르몰라다 간의 케이블카

다음 목적지인 카나제이로 향해 출발하자마자 끝이 안 보이는 스키 리프트가 나타났다. 1688m 카판나 언덕에서 2401m 파소 파돈으로 올라가는 이 4인승 리프트의 덮개는 투명 플라스틱이었다. 그 위의 산장에서 점심을 먹고 이쪽 저쪽으로 오르내리며 한참을 보냈다.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꽃이 만발한 사스 룽고

-파소 포르도이, 발 디 산 니콜로


③사스 포르도이의 걷는 길 이정표

③사스 포르도이의 걷는 길 이정표

파소 포르도이에서도 케이블카 한 번이면 표고차가 700m를 넘는 사스 포르도이로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출발할 때는 포르도이봉의 꼭대기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쾌청한 날씨였는데, 올라가는 사이에 구름이 몰려와 경치는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됐다. 포르도이 산장에는 여러 갈래로 트레킹 코스가 나 있었다. 흔히 보에 산장까지 왕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풀 하나 없는 바위산을 걷는 길이라 마음을 접었다. 메마른 석회암 사이에도 점나도나물(세라스티움)이 곳곳에 피었다.

포차 디 파사에서 들어가는 발 산 니콜로를 가보기로 했다. 해발 3000m 가까운 고지에 올라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얼마 가지 않아 피안 프라타체스라는 곳의 길 양쪽에 초원으로 올라가는 리프트가 있었다. 차를 세우고 보니 이 일대의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무제한 탈 수 있는 패스가 30유로였다.

산 니콜로 골짜기는 차를 두고 버스로 들어가야 한다. 마침 사료용 건초를 만드는 시즌이 시작돼 모든 풀은 베어졌고 꽃은 없었다. 파소 산 니콜로를 향해 초원이 끝나고 숲이 시작되는 곳까지 한 시간가량을 걸었다. 나오는 길에 있는 자칭 ‘스키 후의 레스토랑’이라는 식당 ‘돌로미테 가이저’를 권하고 싶다. 산 펠레그리노와 카나제이 바로 동쪽에 있는 아라바를 가보지 못했다.

-파소 셀라, 사스 룽고, 파소 가르데나

세체다의 에델바이스

세체다의 에델바이스

2244m의 파소 셀라에 도착하니 일진광풍이 몰아치고 비까지 내리는 등 도저히 서 있을 수도 없었다. 10분도 안 가 왼쪽에 나타난 플란 데 그랄바라는 대규모 스키 리조트에 들어가니 비바람이 잦아들었다.

여기가 유명한 사스 룽고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있는 곳이다. 케이블카는 두 사람이 서서 타야 할 기다란 대롱 모습이었다. 비바람 때문에 케이블카를 타는 것은 포기하고 그 아래로 난 길을 걸었다. 알펜 로즈와 에델바이스 등 꽃이 지천이다. 파소 셀라에서부터는 사흘 동안 케이블카와 리프트, 그리고 후니쿨라 16개 노선을 70유로에 무제한 탈 수 있는 파소 가르데나 패스가 통용되는 곳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2121m 파소 가르데나에서도 날씨는 좋아지지 않았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왔는데 수레국화가 많았다. 오르티세이에 도착했다.

-세체다, 페르메다, 콜 라이저, 오르티세이

구름 속의 세체다

구름 속의 세체다

어제 샀어야 할 패스를 샀다. 푸르네스에서 한 번 갈아타고 세체다에 올라가 한참을 걸었다. 여행 사진에 흔히 나오는 세체다의 봉우리는 구름 때문에 한치가 계속 가려져 있었다. 투구꽃, 장구채, 에델바이스 등 꽃이 좋았다.

리프트를 타고 페르메다로 내려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네이디아라는 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콜 라이저까지는 걸어야 한다. 호텔과 산장이 여럿이다. 케이블타를 타고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무제한 패스가 있으니까 괜히 내려가 본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라시에사 역으로 걸어가 궤도 위의 차량을 줄로 끌어올리는 푸니쿨라를 탔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정상에서 걷는 길들이 나 있었지만 샬레 라시에사에 들어가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오르티세이의 성당 키에사 산 울리코를 둘러본다.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 곳곳에서 볼 수 있어

-단테르체피에스, 치암피노이, 몬테 데 세우라, 자이저 알름 몽 세우크


②볼자노 대성당

②볼자노 대성당

가르데나 계곡 초입의 셀바에는 단테르체피에스로 가는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중간에 방향을 꺾기 위한 역이 하나 있는 구조다. 주변에 눈에 익은 수레국화가 많아 자세히 보니 그저께 파소 가르데나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곳이었다.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500m를 걸어 치암피노이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탔다. 정상에 식당이 있었지만 걷고 싶은 분위기가 아니라는 판단에 바로 내려 왔다. 디 마리아 아우스트랄리아체 교구 성당이라는 작은 교회를 발견해서 들어가 봤다. 겉과 안이 모두 최신 양식인 멋진 교회. 꼭 가 보기를 권한다.

산타 크리스티나 마을로 가서 2인승 리프트를 탔다. 1626m 몬테 데 파나까지 올라가 6인승으로 갈아타고 도착한 2042m 몬테 데 세우라에는 소가 많았다. 소가 풀을 다 뜯어 먹어버려서 꽃은 없었다. 내려와 차를 끌고 리프트를 타고 가면서 본 물봉선 밭을 찾아갔다.

오르티세이로 돌아와서 자이저 알름의 몽 세우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다시 초원으로 내려가는 리프트가 오후 5시까지밖에 운행하지 않는다고 돼있어 패스를 써 보는 차원에서 내려갔다. 사방으로 걷는 길이 뻗어 있을 뿐 아니라 버스까지 들어오는 곳. 광대한 초원에는 호텔, 식당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다음날 알게 된 것인데 이곳의 호텔에 예약하면 자기 차를 끌고 올 수가 있다. 오르티세이에서 어제 간 성당보다 작지만 더 아름다운 안토니우스 울리히 인 그뢰든을 발견했다. 꼭 가보기를 권한다.

-리바, 말체시네, 시르미오네

①산 니콜로 초입의  돌로미테 가이저 식당

①산 니콜로 초입의 돌로미테 가이저 식당

리바의 두오모인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에 갔다가 성문 밖에 있는 산타 마리아 인비올라타 성당까지 돌아봤다. 리바가 왕년에는 가르다 호수의 북쪽 끝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상업도시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들러볼 만하다.

말체시네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몬테 발도산에 오른 뒤 호수를 내려다 보면서 능선을 타고 걸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해 보니 2시간 반을 기다려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일단 성 밑에 있는 파라디소 페르두토(잃어버린 낙원)라는 정말 위치가 좋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성을 돌아봤다. 산타 스테파노 성당에도 들렀다.

4시간 만에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돌아갔는데도 여전히 대기시간이 2시간이다. 말체시네에서 자고 문을 열기 전에 와서 줄을 서지 않는 한 타기 어려울 것 같았다. 대신 시르미오네에서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겠다 싶어 몬테 발도를 포기하고 떠났다. 하지만 교통체증으로 70㎞가 채 되지 않는 길이 3시간 40분이 걸렸다. 그래도 말체시네나 시르미오네는 마을 전체가 매력이 철철 넘치는 곳이다.

알프스가 선물한 '야생화 천국'…자연 속 걷는 자, 자유를 느끼다

박병원 前 경총 회장은

박병원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67)은 재정경제부 제1차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전국은행연합회장, 국민행복기금 이사장 등을 지냈다. 트레킹 마니아인 박 전 회장은 은퇴 후 여러 국가를 여행하고 있다. 50여 년간 심취해온 꽃 사진에 조예가 깊다.

여행 정보

산지관광의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진 유럽 알프스 중에서 이탈리아 돌로미티는 해발 3000m가 넘는 봉우리가 18개, 마을은 1000~1500m 높이에 있다. 이들 사이를 차로 넘어가는 고개들은 2000m나 될 정도로 온통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우리나라의 인제군보다 좀 작은 면적의 돌로미티에 450개 정도의 케이블카와 스키 리프트가 있다. 스키 시즌인 겨울에는 모두 가동되지만 여름에는 100여 개가 운행한다. 그리고 이 100개를 무제한 탈 수 있는 패스가 47유로의 하루짜리부터, 5일을 쓸 수 있는 120유로짜리까지 다양하게 있다. 지역별 패스도 있는데 발 가르데나 지역의 케이블카, 리프트 16개를 무제한 탈 수 있는 패스가 3일짜리는 70유로, 6일짜리는 93유로다. 케이블카 패스는 거의 필수다.

걷는 길들은 고갯마루와 케이블카 상부 역에서 사방으로 뻗어 있다. 돌로미티 안에 있는 400여 개의 산장은 대부분 숙식이 가능하고 생맥주를 파는 데가 많다.

길 찾을 때 활용하세요 (지명 색인)

Alpe di Siusi(알페 디 시우시) Antoniuskirche St. Ulrich in Grden(안토니우스키르케 울리히 인 그뢰든) Bolzano(볼자노) Canazei(카나제이) Capanna Bill(카판나 빌) Capanna Ra Valles(카판나 라 발레스) Chiesa di Santa Maria Inviolata(키에사 디 산타 마리아 인비올라타) Chiesa di Santa Maria Assunta(키에사 디 산타 마리아 아순타) Chiesa Parrocchiale di Maria Austriliace(키에사 파로키알레 디 마리아 아우스트랄리아체) Ciampinoi(치암피노이) Cinque Torri(친퀘 토리) Col Druscie(콜 드루시에) Col Raiser(콜 라이저) Colle Santa Lucia(콜레 산타 루치아) Compatsch(콤파치) Cortina d’Ampezzo(코르티나 담페초) Coston d’Antermoja(코스톤 단테르모자) Dantercepies(단테르체피에스) Fedaia(페다이아) Fermeda(페르메다) Gardena(가르데나) Malcesine(말체시네) Malga Ciapela(말가 치아펠라) Marmolada(마르몰라다) Mont Seu(몽 세우) Monte Baldo(몬테 발도) Monte de Seura(몬테 데 세우라) Monte de Pana(몬테 데 파나) Neidia(네이디아) Ortisei(오르티세이) Ortisei Furnes(오르티세이 푸르네스) Paradiso Perduto(파라디소 페르두토) Parrocchia di Santo Stefano(파로키알레 디 산토 스테파노) Parroccia di St Maria Assunta(파로키알레 디 마리아 아순타) Passo Falzarego(파소 팔차레고) Passo Gardena(파소 가르데나) Passo Giau(파소 지아우) Passo Padon(파소 파돈) Passo Pordoi(파소 포르도이) Passo San Nicolo(파소 산 니콜로) Passo Sella(파소 셀라) Passo Valparola(파소 발파롤라) Pozza di Fassa(포차 디 파사) Punta Rocca(푼타 로카) Rifugio Boe (보에 산장) Rifugio Faloria(팔로리아 산장) Rifugio Fedare(페다레 산장) Rifugio Lagazuoi(라가주오이 산장) Rifugio Pordoi(포르도이 산장) Riva(리바) San Pellegrino(산 펠레그리노) Sankt Ulich(상크트 울리히) Santa Cristina(산타 크리스티나) Sass Lungo(사스 룽고) Sass Pordoi(사스 포르도이) Seceda(세체다) Seiser Alm Mont Seuc(자이저 알름 몽 세우크) Seiser Alm(자이저 알름) Selva(셀바) Serauta(세라우타) Sirmione(시르미오네) Urtiji(우르티제이) Val di San Nicolo(발 디 산 니콜로) Val Gardena (발 가르데나) Val San Nicolo(발 산 니콜로) Wolkenstein in Grden(볼켄슈타인 인 그뢰든)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