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이란 스스로의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 인생에 투자를 하고, 자기 자신을 위험 차원에서 관리하면서 만들어진 존재다.”

[책마을] 최강 스펙에도 취업난·저임금에 허덕…'밀레니얼 세대' 씁쓸한 현실
미국 저널리스트 맬컴 해리스는 저서 <밀레니얼 선언>에서 미국 밀레니얼 세대를 이렇게 특징짓는다. 이 책의 원제는 다. ‘요즘 아이들’, 더 정확하게는 ‘요즘 젊은이들’이란 의미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밀레니얼’을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로널드 레이건부터 조지 W 부시의 재임 기간에 태어난 미국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다시 말해 미국의 20~30대, 미국의 요즘 젊은이들이 밀레니얼이다.

‘human capital and the making of millenials’라는 원제에 딸린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단순 번역하면 ‘인적 자본과 밀레니얼 세대 만들기’ 정도 되는 이 말은 앞서 소개한 밀레니얼에 대한 저자의 세대론적 규정을 이해할 실마리도 던져준다. 미국에서 1988년에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인적 자본’이란 프레임으로 자기 또래의 밀레니얼 세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석한다. 밀레니얼의 성격을 규정한 환경적·사회문화적·경제적 요인을 구조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짚어가며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밀레니얼은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인적 자본이 되기 위해 기획되고 육성됐다. 부모와 학교, 회사, 사회, 국가 권력의 철저한 ‘위험 관리’ 속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새로운 기술의 도움을 받아 분초를 다투며 시간을 관리하는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월등하게 많은 숙제를 해냈고, 방과후 활동을 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부단히 쌓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들 앞에 놓인 삶은 ‘막대한 학자금 대출금’ ‘유연한 고용’ ‘무한한 경쟁’의 얼굴을 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졸업한 대졸자들의 실업률과 불완전취업률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 결과 값비싼 고등교육을 받느라 큰 빚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그 부채에서 벗어나게 해줄 듬직한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세대가 탄생했다.

역사상 가장 많이 배운 세대는 이렇게 역사상 가장 많이 약물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세대가 됐다. 기술에 기반한 정보 경제 사회의 직업시장에서 밀레니얼은 비싼 값에 팔려나가는 것을 당위적 명제로 내재화하며 자란 세대다. 하지만 생산 기술의 발달은 노동의 가치를 전반적으로 하락시킨다. 그런 만큼 밀레니얼이 느끼는 절망과 좌절은 더 크다. 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가난해졌고 향후 개선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 지원이나 복지에 대해 기대도 하지 않는다. 베이비부머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는 반대로 늘어나는 국가 재정의 큰 부분을 자신들의 몫으로 떼어내 복지 예산으로 축낸다.

저자가 밀레니얼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은 지금의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몰리는 밀레니얼들은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겹친다. 저자가 적의와 반감을 숨기지 않는 미국 베이비부머는 한국의 386세대와 닮은꼴이다. 밀레니얼이 쓴 밀레니얼에 대한 충실한 종합보고서인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현실을 살피고 성찰하는 데도 도움을 줄 만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