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상대성과 동물적 이기심 다룬 '로메리고 주식회사'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 내놓은 걸작 라쇼몽(羅生門)은 '실체적 진실'의 상대성을 다룬다.

우리가 알던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진실'을 탄탄한 문학적 구성과 예술적 카메라 워크를 통해 씨줄과 날줄로 엮어 그려냈다.

제7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최영의 장편소설 '로메리고 주식회사'도 그렇다.

마치 '라쇼몽'에 올리는 헌사인 듯 개인의 이기심, 편견, '소망적 사고'가 빚어내는 인간사의 비극을 관찰하듯 읊조린다.

소설 속 주인공 '나'도 과거 횡령 사건으로 자살한 직원에 대해 완전히 엇갈리는 평가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마치 영화 '라쇼몽'의 한 장면 같았다.

"
특히 소설은 도덕과 예의로 포장한 인간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요즘 유행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지만, 한 꺼풀 들춰보면 그 내면은 부조리와 이기적 사악함으로 썩은 내를 풍긴다.

주인공은 주변 인물들을 "짐승"으로 칭하나 결국 본인도 갈수록 짐승이 되어간다.

그리고 결국엔 악과 손을 잡는다.

작가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모든 등장인물이 '개'이다.

개는 무리 짓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걸 상징한다.

권력 의식과 서열 의식이 강하다.

주인에게 충성한다고 하지만 약한 사람은 문다"면서 "인간도 개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수림문학상] 무엇이 진실이고 누가 짐승인가
9년간 사법고시 공부에서 실패를 맛본 '나'는 손해사정 법인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

제목 '로메리고 주식회사'는 로마와 아메리카를 합성한 이 회사 이름이다.

'나'는 입사 초반 공원 자전거 사고를 조사하다 목격자 중 한 명을 관찰하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이 목격자가 맞은편 오피스텔을 향해 기마 자세를 취하자 유리창이 깨지면서 사람이 숨진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이 '살인'인지, '사고'인지 확신할 수 없다.

만약 살인이라면 유일한 방법은 초능력인 '장풍'을 사용한 것인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사망 피해자는 신원을 숨기고 활동해 온 국가정보원 직원이다.

언론에서는 사망 원인을 두고 갖가지 추측과 억측이 나온 끝에 결국 북한의 최신 암살 무기에 의한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는다.

사고가 난 오피스텔에는 주인공의 여자친구가 산다.

3년간 사귀었지만, 여자친구는 권태를 느끼는 듯 주인공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거의 주지 않는다.

여자친구 집을 드나들다 '장풍'을 사용할지도 모르는 목격자와 자주 마주치게 된 주인공은 오피스텔 살인 현장과 공원 자전거 사고에서 공통점을 찾는다.

모두 이 목격자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증거들을 근거로 '나'는 목격자를 '장풍 살인범'으로 확신하고 다그친다.

목격자는 정체가 밝혀지자 여자친구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 살인은 '미필적 고의'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뿐 아니라 '사적 제재' 문제까지도 다룬다.

순수문학에서 장풍을 등장시키는 건 다소 위험한 시도다.

작가는 그러나 카프카의 '변신'처럼 문학적 은유로 이런 시도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몰입시키기 위한 장치로 초능력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변신'에서 사람이 벌레로 변신했다고 이것을 사실주의 소설이 아닌 판타지로 분류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신독'을 말하지만, 여자친구의 집을 멀리서 훔쳐보고 큰 죄책감 없이 악과 자주 타협한다.

남들을 괴물이라고 부르지만 결국 자신도 괴물이 되어간다.

이상하게도 여자친구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목격자가 그리 밉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은 영화 라쇼몽처럼 열린 결말로 막을 내린다.

이 복잡계에서 우리는 누가 괴물인지, 운명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작가는 소설의 주제 의식에 대해 "모든 사람은 자기 운명을 예언할 수 없다"면서 "인간은 약간씩 애드리브 정도 하는 것이지 이미 정해진 일들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