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뭉크 '여름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첫 번째 작품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한 동기를 햇빛이 눈부셨기 때문이라고 증언한다. 뜨거운 햇빛이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동공의 기능을 마비시켜버린 셈이다.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수많은 별들이 바다와 대지를 어루만진다. 잠들어 있던 기억과 상념들도 살포시 고개를 든다.

노르웨이가 낳은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1889년 완성한 ‘여름 밤’은 이런 기억들이 빼곡히 갇혀 있는 걸작이다. 북극 항만도시 베르겐의 해변에 하얀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여동생 잉게르의 모습을 화폭에 그려넣고 ‘해변의 잉게르’라는 부제를 붙였다. 뭉크 작품답지 않게 비교적 안정적이고 평범하다. 텅 빈 하늘과 바다에 파고든 밤을 배경으로 그렸는데 백야 현상으로 전혀 밤 같지 않다.

바닷가의 바위들은 따뜻하게 묘사한 반면 바다는 차갑게 그려 묘한 대조를 이룬다. 여인은 저녁 무렵 수평선을 배경으로 별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 있다. 여동생의 외양보다는 인간이 느끼는 불안, 공포, 우울, 죽음을 파헤치고 싶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