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배익기 씨가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연합뉴스
2017년 배익기 씨가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연합뉴스
오리무중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반환을 두고 벌인 소송에서 문화재청이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이를 숨겨둔 소장자 배익기 씨가 "1000억원을 주더라도 넘길 생각이 없다"며 버티고 있어 강제 회수가 가능할지 주목된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는 배익기 씨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 이의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5일 밝혔다. 배익기 씨가 소장한 상주본은 한글의 원리가 소개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당초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게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8년 배익기 씨가 자신의 집을 수리하던 중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소유자 배익기 씨가 문화재청에 대가를 요구하면서 상주본이 어디에 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배익기 씨는 1000억원 상당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 땅에 묻혀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면서 "1000억원을 받는다고 해도 주고 싶은 생각이 사실은 없다"고 답한 바 있다.

그는 최근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중재자가 국가 대신 돈을 내겠다고 했다면서 돈을 받게될 경우 상주본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배익기 씨는 "주운 돈도 5분의 1은 찾은 사람에게 준다"며 "상주본은 가치가 1조원 이상이기 때문에 10분의 1만 받아도 1000억원"이라고 말했다.

상주본이 오리무중이 된 건 이번 소송에 앞서 벌어진 소송전 때문이다. 2008년 배익기 씨가 상주본을 공개하자 골동품 판매상인 고 조모 씨는 "고서 2박스를 30만원에 구입하면서 상주본을 몰래 가져갔다"며 배익기 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조 씨의 승소로 확정됐다. 승소한 조 씨는 2012년 상주본 소유권을 국가에 기증했다.

그런데 변수가 등장했다. 배익기 씨의 상주본 절도 혐의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1심은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힌 뒤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배익기 씨는 무죄 확정판결을 근거로 상주본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화재청의 강제집행은 배제돼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1·2심은 "형사판결에서 무죄가 확정됐다는 것만으로 상주본 소유권이 배익기 씨에게 있다고 인정된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의 손을 들어 줬다. 대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배익기 씨에게 회수 공문을 보낸 문화재청은 17일 그를 만나 설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세 차례 정도 공문을 보낸 뒤에도 거부할 경우 법원에 강제집행을 요청해 압수수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