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면 관객 대부분이 무대 위 배우만을 기억한다. 범위를 확장해도 연출가 작가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무대를 빛내는 건 이들만이 아니다. 스토리에 걸맞은 멋진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감독, 화려하고 풍성한 무대를 꾸미는 디자이너, 캐릭터의 특성을 반영해 옷을 만드는 의상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한다. ‘무대를 빛내는 히든 스타’는 뛰어난 실력으로 국내 공연예술 발전을 이끌어온 숨은 주역들을 소개한다. 각 부문의 거장이 된 이들의 성공 비결과 함께 무대 뒤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들어본다.
김문정 뮤지컬 음악감독이 지난달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김문정 온리’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더피트 제공
김문정 뮤지컬 음악감독이 지난달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김문정 온리’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더피트 제공
‘맘마미아’ ‘레 미제라블’ ‘명성황후’ ‘영웅’ ‘웃는 남자’…. 국내 뮤지컬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다.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모두 김문정 음악감독의 손을 거쳤다. 그가 음악감독으로서 함께한 뮤지컬은 초연작만 따져도 50여 편에 달한다. 20년 가까이 국내 뮤지컬계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아온 음악감독이다.

올해도 김 감독이 맡은 뮤지컬은 여덟 편에 이른다. 초연작 ‘시티 오브 엔젤’부터 ‘맘마미아’ ‘영웅’ ‘엘리자벳’ ‘팬텀’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웃는 남자’까지. 최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을 때도 그는 ‘시티 오브 엔젤’ 연습에 한창이었다. 김 감독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일만 하고 있다”며 “감사하면서도 송구한 마음으로 그때그때 주어진 일을 가장 열심히 한다는 각오를 되새기며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뮤지컬 음악은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니라 들으면서 모든 그림이 그려지는 ‘보이는 음악’”이라며 “작품 속 드라마, 배우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무대를 빛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휘부터 배우 노래 지도까지

서울예술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건반 세션 활동을 했다. 1992년 뮤지컬 ‘코러스 라인’의 건반 연주를 맡았다. 1997년 ‘명성황후’에도 참여했다. 이때부터 뮤지컬에 관심을 두고 독학을 시작했다. “뮤지컬 음악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어요. 시간상 제약도 거의 없고 규격화되지 않았죠. 열정 가득한 라이브의 쾌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를 눈여겨본 뮤지컬계 제작진이 2001년 ‘둘리’의 음악을 맡겼다. 본격적인 음악감독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음악감독이 하는 일은 대중이 흔히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우선 무대 아래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며 지휘를 한다. 배우들의 노래 지도(보컬 트레이닝), 넘버(삽입곡) 재배치 등도 한다. “이전엔 악기도 일일이 빌리러 다녀야 했고, 악보 복사도 했죠. 뮤지컬 음악에 대한 거의 모든 걸 했다고 보면 됩니다.”

김 감독은 뮤지컬 음악의 가장 중요한 점으로 ‘유기성’을 꼽았다. “음악만 잘한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에요. 드라마가 빛나도록 해야 하고, 배우들 각자의 성량과 장점도 잘 보여줘야 해요. 배우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노래의 키(조성)도 살짝 낮춰야 합니다.”

최근 열린 그의 콘서트엔 유명 스타가 대거 출연했다. 김 감독은 지난달 7~8일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단독 콘서트 ‘김문정 온리’를 열었다.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이 공연엔 최백호 황정민 임태경 정성화 김주원 김준수 등이 올랐다.

15년간 뮤지컬 오케스트라 운영

김 감독은 그동안의 성과를 2005년부터 이끌고 있는 뮤지컬 전문 악단 ‘더 엠씨 오케스트라’에 돌렸다. 이 악단은 단원 20여 명으로 구성됐으며, 상근 조직이 아니라 프로젝트별로 활동한다. 김 감독의 일을 우선적으로 함께한다. 그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머리가 희끗한 연주자들이 있는 걸 보면 정말 부러웠다”며 “그만큼 오랜 시간 무대를 지키고 있는 건데 우리도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그 꿈을 이뤄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도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오케피’를 꼽았다. 2015년 제작사 샘컴퍼니가 올린 작품으로 황정민 오만석 등이 출연했다. “뮤지컬 오케스트라만의 특성을 잘 담았던 작품이에요. 연주자들이 생계를 고민하는 내용도 녹아 있었죠. 단원들과 극에 감정을 이입하며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그는 지난달 더피트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는 직원 다섯 명과 함께 연주자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일을 한다. 그는 “지금까지 50여 편의 초연작을 올린 기록은 아마 세계 음악감독 중 1등일 것 같다”면서도 “이건 자랑할 일은 아니다”고 했다. “외국에선 16년 동안 ‘맘마미아’만 하는 등 그 작품의 장인이 되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눈을 더 크게 뜨고 많은 뮤지컬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할 겁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