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들의 취미활동이던 낚시가 젊은 여성은 물론 자녀 동반 가족이 함께 즐기는 인기 체험여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재’들의 취미활동이던 낚시가 젊은 여성은 물론 자녀 동반 가족이 함께 즐기는 인기 체험여행으로 떠오르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낚시는 ‘아재’들의 취미였다.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면 부인은 주말과부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낚시터는 담배연기 자욱하고 중장년 남성들만 그득했다. 그렇게 찬밥 취급받던 낚시가 20~30대 여성,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의 마음까지 사로잡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체험형 레저에 대한 관심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가짜 미끼(루어) 등 낚시 장비와 기술의 발전도 대중화를 앞당겼다. 취향에 따라 혼자서도, 여럿이도 즐길 수 있는 게 낚시다. 한동안 붐이 일던 캠핑 문화가 한층 진화한 것이 낚시다. 낚시는 이제 체험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낚시 인구 700만 명…국민레저 1위

충남 보령시에 있는 오천항은 바다 낚시의 성지 중 하나다. 새벽 4시. 혼곤한 새벽잠에 빠져들 시간이지만 오천항은 마치 대낮처럼 밝다. 새벽 낚시를 떠나려는 이들로 항구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낚시도구를 둘러매고 바다로 나가는 이들 중에는 예전에는 보기 힘들던 초등학생을 포함한 가족 단위 낚시여행객은 물론 젊은 청춘 남녀까지 다양한 이들이 섞여 있다. 배에 오르니 낚시 경험이 많은 이들은 낚시 채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릴대를 조정하고 가짜 미끼를 단다. 선장은 낚시를 떠나기 전 승선한 조사(釣師)들의 구명복을 일일이 챙기고 안전 수칙을 설명해줬다. 배는 긴 기적소리를 한번 토해내고 쏜살같이 바다로 향했다. 이제 바다 낚시의 시작이다.
바다 낚시의 성지로 불리는 충남 보령 오천항 앞바다.
바다 낚시의 성지로 불리는 충남 보령 오천항 앞바다.
세종대 관광산업연구소와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여행 동향을 조사한 결과 우리 국민의 취미생활 1위로 등산(31%) 해양스포츠(28%) 골프(17%)를 제치고 낚시(40%)가 선정됐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바다낚시를 즐긴 사람은 343만 명이고 전체 낚시 인구는 700만 명을 넘었다. 그만큼 낚시는 대중적인 레저로 부각되고 있다.

낚싯배에 같이 탄 김정주(45) 이미진(41) 씨 부부는 낚시에 푹 빠진 커플이다. “원래 우리 부부는 캠핑을 좋아했는데 우연히 제주도에서 배낚시에 동행하면서 고등어를 엄청 잡았어요. 낚시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날로 낚시도구를 사고 주말마다 배낚시하러 다닙니다.”

김씨는 카본으로 만든 고급 릴낚시 세트는 물론 구명조끼에 의자까지 각종 장비를 구입하는 데 400만원 가까이 썼다고 한다. 이 정도면 부부싸움으로 이어질 만도 한데 부인 이씨의 반응은 의외였다.
일대일 강습 등 낚시 초보자를 위한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일대일 강습 등 낚시 초보자를 위한 서비스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전에 사회인 야구를 할 때는 주말마다 운동하러 가서 저 혼자 심심했는데 낚시를 하면서부터는 둘이 같이 장비도 의논하고 주말 낚시여행 계획도 짜면서 대화가 늘었어요.”

피곤하지 않냐고 묻자 남편 김씨가 우럭 2마리가 담긴 어망을 들어보였다. “낚시라는 게 참 묘해요. 안 잡힐 때는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한 마리라도 잡히면 그야말로 짜릿하기 이를 데가 없어요. 이 맛에 낚시를 합니다.” 대답하는 중간에도 찌가 움직이자 그의 눈길은 낚싯대로 옮겨갔다.

다른 이들이 최소 우럭 한두 마리는 잡는 동안 야속한 물고기들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 흔한 입질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루함에 잠시 한눈을 팔던 순간 갑자기 낚싯대에 미묘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얼른 낚싯대를 잡아채고 릴을 돌렸다. 순간 낚싯대가 활처럼 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잡은 것이 아닐까 흥분했지만 옆에 있던 노련한 조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구를 낚으셨군요.”

젊은 층과 여성에게도 어필하는 힐링 레저

낚싯줄이 얕은 바다에 있는 구조물에 걸리거나 수초에 걸릴 때 조사들끼리 쓰는 말이다. 괜히 헛힘만 쓰고 아까운 줄을 끊어내야 했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입질도 없었다. 지루함에 잠시 한눈을 팔던 순간 갑자기 입질이 느껴졌다. 재빠르게 낚싯대를 채고 릴을 감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쳤다. 파닥이는 물고기의 움직임이 짜릿하게 느껴졌다. 3분 정도의 사투 끝에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팔뚝만 한 우럭이었다.
배낚시의 매력 중 하나는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배낚시의 매력 중 하나는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옆에서 우럭을 잡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현희 씨(29)는 내심 부러운 듯 연신 릴을 돌렸다. 그는 증권회사에 다니는 5년차 직장인이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 왔다가 배낚시에 맛을 들였다. 이제는 한 달에 1~2번 정도는 혼자서도 어김없이 배를 타는 준프로조사가 됐다.

“증권사가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데 배낚시를 하면 1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아요.”

김현희 씨처럼 최근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한 여성 낚시 인구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SNS)인 인스타그램에서 ‘낚시하는 여자’를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1만3000여 개의 관련 사진이 뜬다.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과시할 수 있는 점도 낚시가 젊은 층에 어필하는 요인이 됐다. 남성 중심의 기존 동호회 문화에서 여성들이 낚시를 배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회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미혼 여성이 낚시에 몰입하는 것은 시대가 변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은 매달 전국 바닷가를 돌며 출조 행사를 한다. 낚시전문가들은 “미혼 여성을 포함한 젊은 층이 낚시를 즐기는 것은 최근 방송에서 다양한 낚시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낚시에 대한 호기심과 친밀감이 생긴 것이 1차적인 원인”이라며 “요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잘맞고 다이내믹한 부분도 있어 젊은 층에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초보낚시인 위한 강의 온라인에 가득

낚시는 ‘나홀로 여행족’들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새로운 ‘힐링’ 취미의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다. 승패와 경쟁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들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요가, 등산 같은 취미를 찾는데 낚시가 그런 힐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럿이 어울려 가면 더 큰 물고기를 놓고 경쟁을 즐길 수도 있지만, 낚시의 목적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혼자 훌쩍 떠나 조용히 즐길 수도 있는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층이 만지기 징그러워하는 생미끼 대신 실리콘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루어(가짜 미끼)가 개발된 것도 낚시에 대한 장벽을 낮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루어낚시로 잡을 수 있는 어종이 한정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루어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주꾸미, 광어, 우럭, 대방어, 농어 등 인기 어종 대부분을 루어로 낚을 수 있게 됐다.

낚시 입문자들이 늘면서 이들을 맞는 업체들은 시설 투자를 늘리고 맞춤형 강습 서비스를 강화하는 등 손님 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요즘 낚시터에 가면 낚시 초보자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마련돼 있다. 현대식 시설로 여성과 젊은 층의 접근성을 높이는 건 물론이고 원하는 손님에겐 미끼를 바늘에 꿰어 물고기를 잡기까지 낚시 전 과정을 직원들이 1 대 1로 강습한다. 심지어 초보낚시인들을 위한 낚시 강의가 온라인에 가득하다.

오전 11시. 낚시가 약간 소강상태가 되자 선장은 잡은 고기 몇 마리로 능숙하게 회를 떠 줬다. 잡자마자 회를 떠서 맛을 보니 생선이 쫄깃하고 입에서 녹아 내렸다. 예전에는 회가 있으면 소주 한 잔 들이켜는 재미에 배를 타는 사람도 있었지만 해상사고 이후 낚싯배에서 술을 마시면 1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배 안에서 불을 사용하기도 어려워 점심도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오후가 되자 새벽부터 출조를 나온 탓인지 피곤이 몰려왔다. 그러자 선장은 이벤트를 알리는 방송을 내보냈다. “자 이제부터 1시간 동안 광어를 잡는 조사님께는 승선권 2장을 드리겠습니다. 광어를 못 잡을 경우 가장 큰 우럭을 잡는 분에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낚싯대에 온신경을 기울였지만 1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승선권은 부부 조사에게 돌아갔다. 어느새 배낚시가 끝나갈 시간이다. 생각보다 수확은 많지 않았다. 우럭 2마리가 전부. 그나마 그 배에서는 가장 큰 우럭을 잡은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땅에 발을 디디니 살짝 육지멀미가 올라왔다. 우럭을 아이스박스에 넣고 집으로 향했다. 멀리 바다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