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디자이너 폴 스미스 "매일 찍어 기록한 사진이 제 디자인의 원천"
영국의 세계적 디자이너 폴 스미스(73·사진)는 클래식에 위트를 가미한 패션으로 유명하다. 영국적 장인 정신에 특유의 유머감각을 결합해 국제적인 패션 언어로 소화해서다. 그를 ‘가장 영국적인 디자이너’라고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물네 살이던 1970년 노팅엄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연 가게는 40여 년만에 세계 72개국에 400여개 매장을 갖춘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1995년 영국 패션산업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왕 수출공로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기사 작위도 얻었다.

스미스의 패션 디자인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개관 5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5일 개막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전이다. 스미스가 디자인한 의상뿐 아니라 사진과 회화, 오브제 등 540여 점과 수십년간 수집한 명화, 팬들로부터 받은 선물까지 아우른다. 유서 깊은 노팅엄 1호점 내부 공간을 전시장에 그대로 구현했고, 세계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과 책·자전거·기념품·팬들에게 받은 선물로 채워진 디자인 스튜디오와 사무실도 재현해 보여준다.

이날 전시에 맞춰 내한한 스미스는 “보이는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니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말라”고 말했다. 영감을 얻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은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내가 작업한 건 것들을 찬찬히 둘러보세요. 물론 남들을 모방한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겠죠. 영감을 얻어내려면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고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항상 기록해둡니다.”

그는 전시 제목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이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르는 이에게 나를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붙였다”고 설명했다. 스미스는 DDP가 이라크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공간이라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하디드는 내가 존경하는 건축가입니다. 주변 동대문 일대가 패션으로 유명하고 이곳에서 1년에 한두 차례 패션위크도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어 더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스미스는 “내 삶을 바꿔놓은 것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열한 살 생일 선물로 받은 카메라였다”고 했다. 사진으로 순간 포착하는 삶의 단면에서 강한 예술적 에너지를 느꼈다. 사진을 찍어가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간 그는 왕립예술학교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한 여자친구 폴린(지금의 아내)의 제안으로 노팅엄에 작은 패션 부티크를 열었다. 1979년 런던으로 가게를 옮긴 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 작업을 디자인 예술에 적용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구축했다. “리투아니아 교회에서 찍은 사진은 셔츠의 스트라이프 무늬에 적용했습니다. 중국 안전요원의 옷 색깔은 남성 정장을 만들 때 사용했구요. 런던의 꽃박람회에서 찍은 사진들은 스커트와 가방의 무늬로 바꿨어요. 그동안 직접 촬영한 사진을 비롯해 기록, 노트, 낙서, 스케치 등이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