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欲의 만화경…그 허상과 마주하다
오욕(五欲)의 세상을 작게 접었다 펼쳐 보인다면 이런 느낌일까. 지난 14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사진)의 무대는 이 세상의 축소판 같았다. 다양한 시공간이 순식간에 펼쳐지고, 욕망하는 주체들이 이를 관통하며 아스러진다.

‘아파트’를 주제로 한 ‘2019 두산인문극장’의 두 번째 무대다. 이창동 영화감독이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만큼 문학적인 색채가 강하다. 소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좌르륵 넘기듯, 극은 속도감 있고 밀도 높게 흐른다. 배경은 1980년대 서울. 준식(조형래 분)이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에 입주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 시절 상경해 온갖 고생을 한 뒤 교사가 된 준식과 그의 아내 미숙(김신록 분)은 서울에 번듯한 집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하지만 준식의 이복동생 민우(김우진)가 찾아오며 분위기는 급변한다. 미숙이 순수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민우를 보며 허상에 둘러싸인 삶에 회한을 느낀 것. 준식은 이 변화에 당황하며 고뇌하기 시작한다.

긴 사각형 모양과 시퍼런 조명의 무대는 미숙이 입주하며 갖고 싶어 하던 수족관을 연상케 한다. 수족관은 당시 서울 중산층의 욕망을 표상한다. 주역 세 명을 포함한 총 여덟 명의 배우가 이 안을 물고기처럼 끊임없이 오간다. 이들은 무대 밖을 나가지 않는다. 무대 양측에 놓여진 의자에 있다가 툭툭 튀어나온다. 배우 각각의 비중도 높다. 주역 이외의 배우들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다양하게 등장한다. 내레이션뿐 아니라 학교 선생, 준식 부모 등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복잡하고 난해한 원작을 쉽고 역동적으로 풀어낸다.

무대 활용도도 높다. 가장 안쪽 중앙엔 그럴싸한 소파가 놓여진 거실, 무대 앞엔 부부의 침실이 배치된다. 거실 옆엔 변기가 덩그러니 있고, 변기 뒤엔 흙과 오물이 질펀하게 깔려 있다. 이 공간들은 준식의 학교,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일하던 시장이 되기도 한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욕망의 화려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허상과 함께 마주하게 된다. 공연은 다음달 8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