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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콘텐츠는 흐른다"
책·게임도 스트리밍 시대
그래픽=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그래픽=허라미 기자 rami@hankyung.com

동영상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2016년 국내에 진출했을 때 업계의 많은 관계자는 ‘찻잔 속 태풍’ 정도로 여겼다. 다운로드와 인터넷TV(IPTV)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가 스트리밍으로 쉽게 바뀔 순 없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진짜 태풍’이었다. 앱(응용프로그램)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넷플릭스 스마트폰 이용자는 2016년 9월 8만 명에서 지난해 9월 90만 명, 올 3월 153만 명으로 급증했다.

스트리밍이 콘텐츠 전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동영상과 음악 시장에선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고, 전자책 게임 등에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편리성과 저렴한 가격, 콘텐츠 파워 등을 무기로 이용자 층을 확대하고 있다. “모든 콘텐츠는 흐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月 1만원에 음악·영화·책 무제한…'스트리밍'에 빠진 대한민국

정보통신진흥원과 국제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세계 동영상스트리밍과 음원스트리밍 시장은 2012~2017년 각각 연평균 31.4%와 55.2% 성장했다.

전자책 부문에선 지난해 스트리밍 방식의 구독서비스 ‘밀리의 서재’가 히트를 치자 교보문고, 예스24도 비슷한 서비스를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를 맞아 스트리밍의 영향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구글이 올 하반기 선보이는 5G 기반 게임스트리밍 ‘스타디아’는 시장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30대 직장인 A씨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주로 넷플릭스를 본다.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킹덤’부터 아이유가 주연한 영화 ‘페르소나’까지 두루 섭렵했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당신과 자연의 대결’ 같은 인터랙티브 콘텐츠(이용자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콘텐츠)에도 푹 빠졌다. 주인공이 먹는 시리얼부터 듣는 음악까지 직접 고르다 보니 작품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종종 스트리밍 방식의 전자책 구독서비스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책도 읽는다. 서점에 있는 것처럼 이런저런 소설을 뒤적이다 패션잡지나 시집도 눌러본다. 길을 걸을 땐 ‘멜론’ 앱(응용프로그램)을 켠다. ‘For U’ 메뉴에 들어가 내 취향에 맞게 추천해 준 음악들을 듣는다. 게임광인 그는 구글 ‘스타디아’ 출시 소식에도 들떠 있다. 집에서 PC로 하던 고사양 게임을 어디서든 즐길 수 있게 돼서다.

콘텐츠 소비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굳이 TV를 켜거나 PC로 다운로드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버튼 하나만 눌러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재생(스트리밍)해 즐기는 게 일상이 됐다.

넷플릭스 이용자 70%가 ‘2030’

정보기술(IT) 기기에 능숙하고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스트리밍 방식으로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콘텐츠를 편리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스트리밍(OTT) 대표주자인 넷플릭스의 주요 이용자도 밀레니얼 세대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넷플릭스 이용자의 39%가 20대다. 30대도 28%에 이른다. 40대는 17%, 50대는 16%다. 이선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ICT통계정보연구원은 “OTT는 TV보다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하고 이용하는 서비스”라며 “이런 변화를 즐기는 젊은 세대와 학생, 사무직의 이용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아무리 편해도 비싸다면 2030세대를 사로잡기 어렵다. 스트리밍이 콘텐츠 소비의 대세로 부상한 결정적인 요인은 가격이다. 다운로드할 때는 건당 금액을 지급해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스트리밍은 월정액을 내면 그 플랫폼에 있는 콘텐츠를 모두 ‘구독’할 수 있다. 대부분 한 달에 1만원 남짓이다. 월트디즈니 등 새로 사업에 뛰어든 업체들은 더 싼 가격을 내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진출설이 제기된 세계 1위 음원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의 요금제는 파격적이다. 돈을 내는 프리미엄 서비스와 별도로 유튜브처럼 광고를 보면 공짜로 이용할 수도 있다.

스트리밍 요금제에는 또 다른 확산 요소도 담겨 있다. ‘공유’ 코드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런 글이 자주 올라온다. “넷플릭스, 멜론 아이디 공유하실 분 찾습니다.” 요금제에 따라 두 대에서 넉 대까지 접속할 수 있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친구, 가족, 나아가 모르는 사람들과도 아이디를 나누며 비용 부담을 낮추고 있다. 스트리밍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까지 확산되고 있는 요인이다.

높아진 밀착성, 날것의 매력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인 넷플릭스의 ‘당신과 자연의 대결’.  /넷플릭스 제공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인터랙티브 콘텐츠’인 넷플릭스의 ‘당신과 자연의 대결’. /넷플릭스 제공

콘텐츠와 이용자의 밀착성도 높아졌다. 콘텐츠를 다운로드하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 반면 첨단기술을 활용한 스트리밍은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며 콘텐츠 결과도 바꾼다. ‘블랙미러: 밴더스내치’가 대표적이다. 이용자 선택에 따라 주인공이 만든 게임의 성과가 달라진다. 넷플릭스에 이어 유튜브도 이런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원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멜론 등 주요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선 이용자가 직접 큐레이션을 할 수 있다. 좋아하는 가수나 장르를 선택해 리스트를 작성하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방식이다. 이같이 이용자를 콘텐츠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도 스트리밍 서비스의 주요 무기다.

콘텐츠 유통 과정의 혁신도 일어나고 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이 직접 자체상표 상품을 팔 듯 스트리밍업체들은 창작자와 직거래를 통해 ‘자체 브랜드(PB:private brand)’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넷플릭스가 방송사를 통하지 않고 제작사에 곧장 제작을 맡기는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스포티파이는 지난해 9월부터 레이블(음반 제작사)을 통하지 않고 직접 뮤지션들로부터 음원을 받고 있다. 시범 운영 중이지만 수백 곡이 모였다. 유튜브도 같은 방식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해 비용을 줄이려는 의도다. 동시에 이용자들에겐 창작자의 아이디어가 ‘날것’ 그대로 전달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기업들을 중심으로 콘텐츠 제작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통합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며 “한국 업체들도 이에 걸맞게 콘텐츠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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