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영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문자가 아니라 문자를 통해 기록된 이야기들의 힘에 주목한다. 성서와 논어, 금강경,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등 세계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텍스트들과 그를 둘러싼 영향을 분석한다. 역사에 자취를 남긴 작품들을 통해 인류가 생산해온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까치, 472쪽, 2만5000원)
1990년 8월 12일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한 목장 내 사암 낭떠러지에서 커다란 척추뼈와 다리뼈 등이 발견됐다. 여성 탐험가 수전 핸드릭슨은 육식공룡의 뼈임을 직감했다. 9m 깊이의 실트암과 사암 속에 묻힌 뼈들을 덩어리째 땅에서 분리하는 데만 2주 넘게 걸렸다. 공룡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 ‘수(Sue)’로 명명됐다.6700만 년 만에 땅 위로 나온 수의 앞길은 험난했다. 수가 묻혀 있던 땅의 주인과 발굴 당시 이를 단돈 5000달러에 샀다고 주장하는 블랙힐스지질연구소, 땅이 포함된 인디언보호구역을 관할하는 수(Sioux)족이 서로 소유권을 주장했다. 게다가 연방정부까지 가세해 소유권을 주장하며 수를 통째로 압수했다. 여러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민형사상 분쟁에 증인으로 불려다닌 끝에 소유권은 땅주인에게 넘어갔고, 1997년 10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760만달러(약 88억원)에 낙찰됐다. 수의 새로운 주인은 시카고의 필드자연사박물관. 맥도날드와 디즈니가 후원한 덕분이었다.필드박물관이 12명의 전문가를 동원해 수를 복원하는 데는 3만 시간 이상 걸렸다. 연구 결과 수는 세계 최강의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 렉스(티렉스)로 판명됐다. 생존 당시 수는 키 4m, 몸길이 13m, 몸무게는 10t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필드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 된 수는 2000년 5월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뒤 16년간 2500만 명이 관람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쥬라기 공원’의 실제 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필드박물관의 석좌큐레이터인 랜스 그란데가 쓴 《큐레이터》에는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는 자연사박물관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큐레이터라는 직책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이 어떤 과정으로 자연사에 입문하게 됐고, 어떤 공부와 훈련 과정을 거쳐 큐레이터로 성장해왔는지뿐만 아니라 필드박물관을 움직여온 다른 큐레이터와 그들의 전문 분야 이야기까지 들려준다.미국에서 자연사박물관의 소장품 수집과 전시 기획에 그쳤던 큐레이터의 역할 범위가 새로운 과학지식의 습득과 보급으로 확대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20세기 후반에는 대부분 박물관이 전문 직원에게 전시를 전담하도록 했고, 전시 구성에서 큐레이터는 관련 주제의 전문가로서 개입하는 정도 역할만 하게 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전시전문가로서보다는 연구자, 과학자로서의 역할이 커졌다는 것이다. 1982년부터 큐레이터로 일해온 저자의 경력이 이를 말해준다.미네소타주립대 3학년으로 경영학을 공부하던 그가 고생물학에 눈을 돌린 건 친구가 휴가지에서 사다준 5200만 년 전 어류화석 때문이었다. 화석에 홀려버린 그는 같은 대학의 고생물학과 교수를 찾아갔고, 전공을 지질학과 동물학으로 바꿨다. 이후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돈 로젠과 개러스 넬슨 아래서 박사 과정을 공부한 그는 1982년 시카고의 필드박물관에 큐레이터로 합류했다.책에는 그가 와이오밍주 고산 사막지대의 석회암층인 ‘그린리버층 뷰트 화석지’에서 상업적인 화석 채석장과 채석공, 아마추어 화석수집가 등을 끌어들여 화석을 발굴하고 박물관의 소장품을 확보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뷰트의 화석들은 6500만 년 전 백악기의 대멸종 이후 북미지역 생태계가 어떻게 회복됐는지 보여주는 현존 최고의 기록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멕시코, 러시아, 일본에서의 공동 연구 과정도 흥미롭다.책의 원제는 ‘Curators’다. 저자뿐 아니라 다른 큐레이터들의 모험 가득한 현장 이야기도 소개한다. 필드박물관에는 개미부터 공룡까지 아우르는 전문가가 포진해 있고, 이들은 해저부터 히말라야의 고산에 이르기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를 탐험하며 인류와 지구의 진화 과정을 찾아내고 해석한다.생태학과 진화, 버섯류 전문가인 그레그 뮐러, 40만 종이 넘는 속씨식물 전문가인 식물학자 릭 리, 지의류 전문가 토르스텐 럼슈, 남미대륙 식물군과 엘니뇨 현상 전문가인 마이클 딜런, 조류학자 존 베이츠, 운석학 큐레이터 미낙시 와드와와 필립 헥, 공룡시대 이전의 포유류인 디키노돈트 전문가인 켄 앤지엘키, 해양생물학자이자 무척추동물 큐레이터인 재닛 보이트, ‘스파이더우먼’으로 불리는 곤충학 큐레이터 페트라 시어왈드, 개미 큐레이터 코리 모로…. 각 분야 큐레이터들의 열정 가득한 여정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1894년 개관한 필드박물관은 2700만 점의 표본을 소장한 미국 3대 자연사박물관의 하나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아직 보유하지 못한 우리로선 이래저래 부러울 수밖에 없다. 문화대국으로 가는 길이 참 멀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에세이를 쓰는 게 시와 노랫말을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어요. 살아온 것들을 얘기하다 보니 자칫 무게감 있는 회고록 같아 보이기도 했죠. 너무 진지하게 읽히지 않도록 편하고 가볍게 쓰려고 애썼습니다.”싱어송라이터 정태춘 씨(65·사진)는 25일 자신의 노래인생 40년을 되돌아본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책은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정씨 노래의 가사, 미발표작으로 남아 빛을 보지 못한 노랫말과 함께 노래와 세상에 대한 그의 진심어린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그는 1978년 자작 앨범 ‘시인의 마을’로 데뷔해 1979년 ‘MBC 가요대상 신인상’ 및 ‘TBC 방송가요대상 작사부문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얼굴을 알렸다.정씨는 “40년 세월 노래를 불러오면서 내 이야기를 함부로 꺼내지 않기로 결심했고 최근엔 노래 만들기까지 접었었다”며 “시를 쓰는 것이나 세상을 향해 직접 이야기하는 것 모두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입을 닫았다”고 했지만 그는 이름을 숨긴 채 개인 블로그를 통해 틈틈이 글을 올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끈을 놓지 않았다.그에게 다시 펜을 집어들게 한 건 ‘정태춘·박은옥 데뷔 4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올해 준비한 프로젝트들 때문이었다. 정씨는 “딱 1년만 밖으로 나와 나를 개방하고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겠다고 마음먹었다”며 “무엇보다 내가 지닌 의미가 있다면 모두 나눠줬으면 하는 바람에 이번 에세이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책에는 한국 사회의 모순과 저항을 담아낸 가사 121곡이 수록돼 있다. 1부 ‘내게 노래는 이렇게 왔다’로 시작해 5부 ‘2012년, 10년 만의 새 앨범’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했다. 정태춘 개인의 연대기적 삶을 담았지만 1970~1980년대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는 “작곡한 노래에 대한 에피소드는 물론 20~30년 전 당시 상황과 함께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고 설명했다.많은 사람이 정태춘을 저항가수, 투쟁가수로 기억하지만 사실 ‘서정가수’였음을 책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책을 통해 그의 아름다운 노랫말과 생활에 천착한 에피소드를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그 기저에 사람들 사이에 남아 있는 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그의 오랜 동료이자 부인인 가수 박은옥 씨는 “정태춘 개인의 일기가 사회의 일기로 바뀌고 후반엔 그 둘이 함께 노랫말 속에 드러났지만 그는 원래 서정성을 노래에 담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며 “내가 변화되는 과정은 물론 한국 사회 일상이 변화하고 축적돼온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천년의시작, 348쪽, 1만8000원)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금연 광고는 흡연자들이 담배를 끊게 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 의도와 다르게 광고를 본 뒤 흡연자들은 더 많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광고 속 흡연 장면이 무의식적으로 담배에 대한 이미지를 연상시켜 흡연 욕구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무의식의 영역은 깊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행복감, 배고플 때 쇼핑에 더 많은 돈을 쓰는 이유, 권력이 주어질 때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폭력, 어려 보이는 범죄자에게 내려지는 낮은 형량도 무의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는 무의식이 일상적인 삶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고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세계적인 무의식 연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이분법을 경계한다. 의식은 좋고 무의식은 나쁘다는 것은 편리하지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의식이 늘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책은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과 더불어 우리가 언제, 어떻게 의식과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지 파고든다.무의식은 말 그대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릴 일은 아니다. 저자는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서로를 지지해준다”며 “때로는 어려운 문제의 답이 꿈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의식에서 그 문제를 오래 고심한 끝에 나온다”고 서술한다. 무의식은 의식이 중요한 정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자기 조절을 잘 하는 사람은 남보다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마음의 통제’ 부분도 흥미롭다. 그들은 의식적이라기보다 습관적이고 자동적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성인군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말한다. “무의식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숨겨진 마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존 바그 지음, 문희경 옮김, 청림출판, 508쪽, 1만8000원)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