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현대사 100여 년을 거쳐간 수많은 공주의 삶을 재조명하는 연극 ‘공주들’이 무대에 오른다.

극단 신세계는 오는 13~23일 서울 혜화동에 있는 ‘연극실험실혜화동1번지’ 무대에서 이 작품을 선보인다. 연출은 극단 신세계 대표인 김수정이 맡는다. 배우 강주희 권미나 김보경 김선기 김정화 등이 다양한 모습의 공주들을 연기한다.

제목 ‘공주들’에서 공주는 구멍 공(孔), 주인 주(主)이다. ‘구멍 난 주인들에 대한 이야기’란 의미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며 공주로 키워지고, 만들어지고, 이용되는 과정을 담았다. 이들은 국가와 사회, 가족과 타인에 의해 희생당하기도 한다. 가까운 가족들끼리도 서로를 공격하고 수단으로 삼는다. 역사 속에서 이런 모습의 공주는 수없이 반복 재생돼 왔다. 공주들의 화려하지만 갇힌 사회 속 공주들의 모습을 잘 드러낸다.

어느 날 공주들은 서로를 바라보게 되고 자신의 의지로 공주가 된 것이 아니라 공주로 키워지게 된 것을 깨닫는다. 강요된 왕관을 벗고 공주가 되기를 거부하기로 하는 등 유쾌한 반전도 꾀한다. 이 과정은 험난하고 어렵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관객들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100여 년의 역사 속 공주들을 재조명하는 것은 우리 사회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많은 현대인이 가부장제, 민족주의 등에 여전히 갇혀 있으며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역시 공주들처럼 외관은 화려하지만 구멍 난 채 회복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녹였다.

극단 신세계 관계자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하는 풍토가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언제부터 당연시됐는지 묻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