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톄궈둔 안쪽에 옥수수빵을 붙여 함께 익힌다.
③ 톄궈둔 안쪽에 옥수수빵을 붙여 함께 익힌다.
중국의 동북지역으로 떠나보자. 우리가 만주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만주라는 지명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만주는 청나라 2대 황제인 훙타이지가 여진족을 개칭한 족칭이다. 만주족은 지금도 1000만 명이 넘는다.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세 번째로 인구가 많다.

동북이라는 말도 이중의 뜻이 있다. 좁은 의미로 동북 3성이라 하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세 개의 성을 지칭한다. 그러나 넓은 범위로는 네이멍구자치구 동부의 츠펑시 싱안맹 시린궈러맹 퉁랴오시 후룬베이얼시 등 5개 지역을 포함하기도 한다. 오늘 음식기행은 후자로서 대흥안령 산맥을 중심으로 동남쪽의 동북평원과 서북쪽의 북방초원을 아우르는 동북이다.
④ 다빙이라고 부르는 지져낸 밀떡
④ 다빙이라고 부르는 지져낸 밀떡
우리 선조 일제에 항거해 피를 뿌린 동북지역

동북은 역사건 기후건 음식이건 뜨겁다. 대륙의 동부는 여름엔 40도를 넘나들면서 태양의 열기가 수직으로 쏟아진다. 겨울 혹한도 뜨거울 만큼 매섭고 실내에는 난로의 열기가 넘쳐서 뜨겁다. 역사로는 동아시아 대륙은 물론 세계를 뒤흔든 진원지가 바로 이곳 동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비족 탁발부가 대흥안령 산지에서 초원으로 나와 다시 화북으로 진입해 북위를 세우고 북중국을 통일했다. 그들이 출발한 곳도, 중간에 힘을 키운 후룬베이얼 초원도 모두 동북에 속한다. 거란이 흥기해 요나라를 세웠다. 그들의 중심부는 바로 네이멍구자치구의 츠펑(赤峰)이다.

여진의 아골타는 금나라를 세워 요나라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북송의 두 황제를 포로로 잡아들였고 그로 인해 북송은 남송으로 찌그러졌다. 그들의 중심지는 하얼빈의 아청구(阿城區)로 지금은 금상경역사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칭기즈칸의 가까운 조상이 살았던 곳 스웨이도 후룬베이얼 초원에 있다. 몽올실위가 서천한 다음에 칭기즈칸이 태어났다. 동북평원 북방초원 서역신장은 물론 티베트까지 아우르고, 중원문명을 통째로 삼켜버린 동아시아 최대의 제국 대청(大淸)은 선양 인근에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① 하얼빈 여행의 필수 맛보기인 마오마오쉰러우의 쉰러우.
① 하얼빈 여행의 필수 맛보기인 마오마오쉰러우의 쉰러우.
청나라 제국의 구조는 중화민국을 거쳐 바로 오늘의 신중국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도 살아있는 현대사가 이곳에 깊이 새겨져 있다. 19세기 중엽부터 고난의 조선인들 다수가 이주하기 시작했다. 의병에서 시작해 동북항일연군까지 20세기 전반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해 뜨거운 피를 가장 많이 뿌린 곳도 바로 이곳 동북이다.

역사가 뜨겁고 태양도 뜨거운 곳에서는 이열치열로 뜨거운 음식을 찾아보는 것이 제격이런가. 동북평원의 뜨거운 음식으로는 톄궈둔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북방초원에서는 당연히 양고기다. 양 한 마리를 통으로 구워낸 취안카오양이나 수육으로 잘 삶아서 작은 단도로 슥슥 베어 먹는 서우바러우가 대표적이다.
② 여러가지 볶음요리를 넣어 먹는 라오창춘빙.
② 여러가지 볶음요리를 넣어 먹는 라오창춘빙.
무쇠솥으로 끓여내는 요리 일품

톄궈둔의 톄궈는 무쇠솥이다. 둔은 센 불로 푹 끓인 다음 약한 불로 오래 끓여내는 조리방법이다. 한마디로 무쇠솥에 푹 끓여내는 동북 특유의 음식이다. 주재료는 닭이나 거위, 어른 팔뚝만 한 민물고기 또는 돼지갈비 등을 사용한다. 재료들을 솥에 넣고 장(醬)을 깐 다음 각종 채소와 두부 등을 얹고 센 장작불로 익힌다. 충분히 익힌 다음 불을 낮춰 자글자글 끓이며 먹는 푸짐한 음식이다. 솥의 안쪽 육수가 닿지 않는 곳에 옥수수빵을 붙여 함께 익혀 먹기도 한다.

직경 70~80㎝ 정도의 검은 무쇠솥에서 거침없고 대담한 북방의 힘이 실감난다. 허연 김이 푹푹 치고 올라오는데, 그르릉 소리가 나도록 솥뚜껑을 과감하게 밀어젖히고는, 긴 젓가락으로 뜨끈뜨끈한 고기 한 점을 집어내 먹는다. 50도가 넘는 독한 백주 한 잔을 곁들여 먹으면 더욱 잘 어울린다.

톄궈둔의 조리도구도 흥미롭다. 솥을 거는 아궁이만 해도 우리에게는 꽤 친숙하다. 솥 아래에 장작불을 넣지만 아궁이 중간에 연통을 설치해 연기를 굴뚝으로 빼낸다. 이 덕분에 연기로 인한 번잡스러움도 없다. 요즘은 하나의 원탁에 무쇠솥을 두 개 또는 세 개까지 설치한 것도 있다. 세 가지 주재료를 각각 넣은 세 솥의 요리를 열댓 명이 한 상에서 즐길 수 있다. 어린아이도 대여섯은 되는 대가족 열댓 명이 이런 톄궈둔을 즐기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대가족 잔칫상이다. 보기만 해도 풍성함이 넘친다. 동북 어디를 가든 우리나라의 닭볶음탕 집처럼 톄궈둔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간판에 둔위나 둔지라고 쓰인 것들은 톄궈둔과 같은 종류의 식당들이다. 하얼빈시 난강구 하솽로는 톄궈둔 전문식당가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 위워펑이란 식당을 추천할 만하다.

개인용 칼로 양고기 베어 먹는 서우바러우

초원의 양고기 바비큐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양 한 마리를 통으로 구운 카오취안양은 한 마리에 500위안에서 2000위안이 넘는 것까지 가격 폭이 크다. 초원의 유명 관광지에서 민속공연까지 곁들이면 1만위안까지 한다. 여행할 때 먹을 음식으로는 적극 추천하지 않는다. 일단 한 마리면 우리 식성으로 30명 정도는 먹어야 한다. 통으로 굽다 보면 덜 익은 부위가 곳곳에 숨어 있어 자칫 뒤탈이 날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것보다는 양갈비나 양다리를 따로 구워낸 것이 실용적이고 맛도 더 좋다. 양고기를 구울 때는 쯔란과 고춧가루 등의 강한 양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양고기의 누린내가 나지 않는다. 양꼬치와 마찬가지로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그러나 진짜 고급 양고기 요리는 구운 것보다 삶아낸 것이 아닐까. 양고기 수육은 식당마다 나름의 방법으로 누린내를 잡아낸다. 내가 그동안 다녀본 북방초원의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초원의 양고기는 누린내 없이 정말 맛있다. 동반자들과 여행하면서 중국 음식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도 크게 실패한 적이 없다. 삶은 양고기에는 대개 조그만 개인용 칼을 하나씩 준다. 손으로 잡고 칼로 고기를 잘라 먹는다는 뜻으로 서우바러우라고 한다. 전통시대라면 허리춤에 찬 살벌한 칼을 꺼내 각자 알아서 고기를 베어 먹었다. 거친 북방초원의 호방한 사내의 기풍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를 연상한다면 반주로는 독한 북방의 백주가 최고다.

동북 평원에서는 밀과 옥수수를 주식으로 한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만터우(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익혀낸, 소가 없는 큼직한 빵)가 기본이다. 소를 넣은 자오쯔(餃子)나 바오쯔(包子) 등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밀가루로 밀떡을 만들어 각종 볶음요리와 함께 먹는 특색 있는 요리가 나오기도 한다.

자오쯔는 둥팡자오쯔즈왕(東方餃子之王)이 유명한 체인점이다. 동북지역 어디를 가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분점이나 평균 이상이다. 선양의 라오볜 자오쯔관이라고 하는, 창업 18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식당은 일부러라도 찾아갈 만하다. 바오쯔는 칭펑이란 체인점도 기억해둘 만하다.

밀떡도 동북의 특색 있는 음식이다. 간단한 볶음요리 몇 가지를 어른 손바닥만 한 밀떡에 싸서 먹는 춘빙도 맛있다. 하얼빈의 중앙대가 180호에 있는 라오창춘빙을 추천할 만하다. 훈제한 돼지고기를 장에 찍은 다음, 기름에 튀긴 밀떡에 싸서 먹는 쉰러우도 좋다. 마오마오쉰러우(大安街 56호) 역시 중앙대가 근처에 있다. 츠펑에 가면 두이자(對夾)라고 하는, 호떡 크기로 만든 밀떡을 기름에 지진 다음 반을 자르고, 그 가운데를 벌려 볶은 고기를 넣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