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끊임없는 변신, 위스키에 지혜를 담다

수요 맞춰 생산량 늘리기 위해
보리 이외 옥수수·밀 등 사용

효율 높은 열교환기 이용해 증류
50년 전 비해 에너지 절반 사용

산업혁명시대 모습 지닌 증류기
전통과 과학기술의 조화 보여줘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의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 현재 가동되는 증류소 중 가장 오래됐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의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 현재 가동되는 증류소 중 가장 오래됐다.

영국은 1776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이후 산업혁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농업 생산성이 증대됐고, 발전된 운송 기술에 의해 곡물이 저렴하게 유통됐다. 농촌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다. 도시의 인구 증가로 주류 소비량이 급격히 늘어났다.

위스키업계도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위스키는 주로 맥아(몰트)를 사용해 생산했다. 맥아란 갓 싹을 틔운 보리를 건조시킨 것을 말한다. 보리가 싹이 틀 때 형성되는 풍부한 당화 효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각 증류소들은 목재를 이용해 건조하던 맥아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토탄(土炭·피트)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건조 용도로 사용한 토탄은 위스키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토탄 연기가 맥아에 스며들어 위스키에서 훈연한 향이 나게 된 것이다. 오늘날 훈연 향은 스카치 위스키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생산량 증대를 위한 노력은 맥아 이외의 곡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대됐다. 1831년 연속식 증류기가 발명된 이후 위스키는 맥아만을 원료로 한 몰트 위스키와 다양한 곡물을 사용하는 그레인 위스키로 나뉘게 된다. 1909년 영국 왕립위원회는 위스키를 ‘맥아의 효소로 당화된 곡물의 술덧(발효액)을 증류한 주류’로 정의하면서 보리 외의 곡물 사용을 법제화했다. 오늘날 위스키는 전 세계에 걸쳐 보리 외에 옥수수, 밀 등을 주원료로 사용한다.

품질 개선에도 눈을 돌렸다. 당화된 곡물은 효모(이스트)에 의해 알코올을 함유한 발효액이 된다. 1861년 파스퇴르가 효모의 존재를 증명한 이래 많은 양조학자들이 우수한 효모를 육종했다. 기존의 자연 효모는 그 상태에 따라 발효액의 향과 맛 그리고 수율이 달랐다. 이것은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큰 장애 요인이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증류소마다 고유의 효모를 개발·육성했다.

품질 혁신을 주도한 건 증류 공정이다. 위스키 증류는 물과 알코올의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 발효액의 알코올 도수를 강화시키는 과정이다. 증류를 통해 나온 위스키 원액은 숙취를 일으키는 성분이 대부분 제거되고 증류 솥에서 생성된 향기가 풍부해진다. 본체 부분이 양파처럼 둥근 모양의 증류기는 ‘단식 증류기(pot still)’라 불리며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데 사용된다. 단식 증류기의 재질인 동(銅)은 증류 시 촉매로 작용해 다양한 향기 성분의 형성을 돕는다. 또 증류기 모양에 따라 생성되는 향기 성분의 양과 종류도 차이가 있다. 증류소마다 각각 추구하는 향의 위스키를 얻기 위해 다양한 모양의 증류기를 사용한 증류 방법이 개발됐다. 스카치 위스키의 다채로움도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발효액을 끓이는 증류 과정은 막대한 열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초기 증류소들은 증류기 밑에 직접 불을 때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에는 연료로 목재를 사용했지만 효율 향상을 위해 이탄 및 연탄 그리고 경유와 천연가스로 점차 바뀌었다. 직화식으로도 불리는 이 방법은 연료의 개량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효율이 낮고 인력도 많이 필요했다. 오늘날에는 스팀 가열 방식으로 개량돼 효율이 높은 열 교환기를 이용한 증류가 보편적이다.

에너지 고효율화는 증류소의 환경 영향을 줄이는 운동의 계기가 됐다. 반세기 전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에너지원만으로 위스키를 증류하는 것이 실현됐다. 물 사용량도 5년 전의 3분의 2로 줄었다. 제조 부산물로 나오는 곡물 껍질과 증류액도 사료 혹은 비료로 재활용하는 증류소가 대부분이다.

[이종기의 위스키 여행] 맥아 건조·증류 공정… 생산기술의 진화가 다양한 위스키 만들어

원료의 당화, 발효, 증류 공정에서부터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지난 1세기 동안 위스키 생산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했다. 위스키 모습도 많이 변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주체였던 위스키 증류소들은 아직도 산업혁명 시기의 흔적을 잘 보존하고 있다. 증류소의 아이콘인 높은 기와지붕을 한 고풍스러운 탑과 조형미를 자랑하는 동 증류기가 그렇다.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도 위스키업계가 전통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전통과 과학기술의 조화를 이뤄 낸 양조자들의 번뜩이는 지혜가 녹아 있는 술, 그 위스키 한 잔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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