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의 거래 손실액은 한 해 평균 68억달러에 이른다.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2.2%에 해당한다.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시장이 크게 출렁일 때마다 ‘개미 필패(必敗)’는 반복됐다. 신간 《투자자의 적》은 투자자들이 매번 손실의 늪에 빠지는 원인을 행동금융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중국 칭화대 금융학과 교수이자 국립금융연구원 부원장인 저자에 따르면 투자자의 적은 외국인도 아니고 음모론도 아니다. 정부나 규제 기관, 상장사나 펀드회사도 아니다. 그가 지목하는 적은 투자자 자신, 그리고 위험에 대한 이해의 한계다.

[책마을] '개미 필패'가 큰손들 탓?… 투자의 적은 내 안에 있다
시장을 움직여온 것은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이라는 것을 전제로 책은 출발한다. 자본시장이 거듭 겪어온 거품과 경제위기의 불씨이기도 했다. 시장은 합리적인 시스템이고 시장 참여자들은 이성적인 존재라는 기존 경제학의 가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과도한 자신감, 대표성 편향, 충동적 결정 등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다양한 이유를 파고든다.

지나친 자신감은 투자 결정에 따른 혜택과 수익은 부풀려 평가하면서 그 일이 가져올 비용과 어려움은 애써 못 본 척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에 집중해 구체적이고 실재하는 정보는 외면해버리는 것은 대표성 편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늘 산 주식이 다음날 10% 오르면 “역시 내가 현명했어”라고 뿌듯해하다가 그다음날 20% 빠지면 “왜 하필 규제 정책을 지금 발표한 거냐”고 투덜거리는 모습은 자기 위주 편향이다. 전쟁론이나 음모론이 주식시장에 파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책임의 화살을 그쪽으로 돌릴 수 있어서다.

감정에 휘둘리는 투자 결정은 날씨가 주식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여준다. 과거 70년간의 데이터에 따르면 뉴욕증권거래소 주가지수는 날씨가 궂을 때보다 맑고 청명할 때 0.2~0.3% 정도 수익률이 높았다. 저자는 세계 40개 거래소에 대한 후속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소개한다. 좋은 날씨에 맑아진 기분이 ‘매수’의 기운을 북돋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취약한 심리에 흔들리지 않을 투자의 원칙은 역시 ‘장기’ ‘분산’ 투자일까. 실제 거래 빈도가 높을수록 투자 수익은 낮았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남긴 “10년 이상 갖고 있지 않으려면 단 10분도 보유하지 마라”는 조언도 유명하다. 하지만 보유 기간이 길다고 수익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조사 대상 투자자 중 10%만 장기 보유로 좋은 수익을 냈고 나머지는 투자 기간과 상관없이 모두 수익률이 좋지 않았다. 반면 분산 투자는 답이 됐다. 시기를 다원화하고 자금도 나눠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데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

저자가 지목한 투자 실패의 결정적인 원인은 투자 주체가 “자신의 투자 능력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었다.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줄 모른 채 서둘러 ‘철수’를 외치고, 자산을 모조리 잃은 뒤에야 “주식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수영을 처음 익힐 때처럼 투자를 배우는 과정도 지루하지만 일이 벌어지면 대응하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주도적인 학습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서는 거시경제의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저자는 “단지 하락의 시점과 폭의 크기만 다를 뿐 거시경제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투자는 반드시 예상치 못한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스스로 자신의 이번 책을 “지난 20년간 행동금융학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연구하고 사색한 결과물을 집대성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600쪽이 넘는 책에 방대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부족하고 산만한 인상을 준다. 각종 데이터를 다양하게 동원하면서 출처와 기준이 명확지 않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대만 주식시장에서 5년간 매년 개인투자자들이 3.8%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서술하면서 ‘5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가 없다거나 조사 대상의 정체나 규모에 대한 설명 없이 “장기 투자자들은 보유 기간의 길이와 관계없이 모두 실적이 좋지 않았다”고 언급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개인뿐 아니라 기관투자가, 상장기업과 정부 기관, 감독 기구까지 투자 관련 결정을 하고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의 편향을 행동금융학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투자뿐 아니라 각종 의사결정을 내릴 때 무의식적인 심리의 한계와 인지 과정에서의 오류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장 참여자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