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낸 아이돌… 페미니즘 논쟁에 휘말리다
온라인에서 시작된 젠더(gender: 사회적 의미의 성(性)) 논쟁에 아이돌 스타들이 휘말렸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한 그룹 레드벨벳 아이린과 ‘여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ing)’는 문구가 적힌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한 에이핑크 손나은이 남성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스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발언, 심지어 팔로우(구독) 취소를 둘러싸고도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가수 겸 배우 수지(사진)와 그룹 AOA 설현이 그 주인공이다.

수지는 지난 18일 유명 유튜버 양예원 씨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널리 알려달라는 국민청원에 참여하고 그 인증사진을 SNS에 올렸다. 양씨는 이 청원에서 서울 합정역 인근 A스튜디오에서 노출 사진을 반강제로 촬영하던 중 성추행을 당했으며 이 사진이 최근 음란 사이트에 퍼졌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수지가 이 청원에 참여하고 인증사진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페미니즘 범주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대두됐다. 수지가 ‘여성 피해자’에게만 집중한 나머지 사실 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일에 섣불리 끼어들었다는 비난도 일었다. 수지는 “페미니즘 문제가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끼어들었다”고 해명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A스튜디오는 양씨 사건과 무관하다며 수지에게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수지는 A스튜디오에 사과하면서도 “이 일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분들의 마음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설현은 가수 아이유, 코미디언 유병재, 배우 유아인 등의 SNS를 ‘언팔’(팔로우 취소)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세 사람 모두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은 전력이 있다. 아이유는 과거 뮤직비디오와 음반에서 롤리타 콘셉트(미성숙한 소녀에 대한 동경이나 성적 집착)를 이용했다며 뭇매를 맞았고, 유병재는 직접 기획한 스탠딩 코미디 콘서트에서 페미니즘을 조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아인은 지난해 트위터에서 페미니스트와 논쟁을 벌였다.

일부 누리꾼은 설현의 ‘언팔’을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 의사로 보고 있다. 성별에 따른 온도 차는 극명하다. 남성 누리꾼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여성 누리꾼은 응원을 보냈다. 언팔로우를 당한 아이유의 SNS에서도 설전은 이어졌다. “후배에게 언팔당하니 기분이 어떠냐”는 식의 조롱성 댓글과 이 댓글을 비난하는 또 다른 조롱이 계속되고 있다.

반대로 FT아일랜드의 이홍기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 철구의 팬이라고 밝힌 사실이 뒤늦게 회자돼 ‘여혐 논란’에 휩싸였다. 이홍기는 팬들에게 “당신들이 혐오하는 발언을 할 때 본 게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성토는 이어지고 있다.

아이돌그룹이 소속된 한 기획사 관계자는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대한 반발이나 불안이 연예인을 향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여성 아이돌 스타가 예전과 달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지만 성별 대결 또는 이성 혐오로 이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호 한경텐아시아 기자 wild37@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