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맛있을까

찰스 스펜스 지음 / 윤신영 옮김
어크로스 / 416쪽 / 1만6800원
영국의 유명 셰프 제시 던포드 우드가 스파클링 와인의 병뚜껑을 큰 칼로 잘라내고 있다. 우드의 테이블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식사가 시작된다.  /어크로스 제공

영국의 유명 셰프 제시 던포드 우드가 스파클링 와인의 병뚜껑을 큰 칼로 잘라내고 있다. 우드의 테이블에서는 이렇게 극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식사가 시작된다. /어크로스 제공

남태평양과 남극해에 사는 비막치어라는 농어목 남극암치과의 바닷물고기는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녀석을 외면했다. 셰프들이 어떻게 요리해도 손님들은 ‘심해의 괴물’이라며 질색했다. 궁리 끝에 수산업자들이 이름을 ‘칠레산 농어’라고 바꿨더니 반응이 확 달라졌다. 세계 판매량이 10배나 늘었다. 최고급 레스토랑들의 메뉴판에도 속속 등장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통합감각연구소장인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는 그래서 음식 맛은 음식 자체로만, 입으로만 느끼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맛을 느끼는 건 여러 감각을 종합한 뇌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느끼는 것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스펜스는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라는 새로운 지식 분야를 만들어냈다. 가스트로피직스는 요리학(gastronomy)과 정신물리학(psychophysics)을 합친 용어다. 실험심리학, 뇌인지학, 신경요리학, 마케팅, 디자인, 행동경제학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응용해 음식과 음료를 맛볼 때 여러 감각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연구한다.

[책마을] 음악따라 달고 짜고… '소리 양념'을 아시나요

《왜 맛있을까》는 스펜스 소장이 가스트로피직스의 신세계로 안내하는 책이다. 음식의 색깔, 냄새, 소리부터 식기의 무게와 질감, 레스토랑의 음악과 셰프의 담음새까지 맛과 음식의 세계에 숨은 비밀을 파헤친다. 맛을 좌우하는 요소는 실로 다양하다. 음식의 재료 및 조리법은 물론 가격, 브랜드, 이름, 라벨, 분위기, 경험 등 수많은 음식 이외의 요인이 통합적으로 작용해 뇌가 맛을 인지하게 된다. 상식의 허를 찌르고,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실험과 아이디어가 꼬리를 문다.

저자는 2007년 감자칩을 씹을 때 ‘바싹’ 하는 소리를 증폭시켜 들려주면 소리가 없을 때보다 15% 더 바싹거리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이 연구로 ‘괴짜과학자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노벨상을 받은 그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팻덕의 스타 요리사 헤스턴 블루멘탈과 함께 ‘소리양념’이란 걸 개발했다. 소리양념은 특정한 소리나 음악을 이용해 단맛, 짠맛, 쓴맛 등을 줄이거나 더하는 방법이다. 저자에 따르면 경쾌한 음악은 단맛을, 고음의 음악은 신맛을, 신나는 음악은 짠맛, 부드러운 음악은 쓴맛을 더 잘 느끼게 한다. “자꾸 손이 가서 원망스러운 간식은 빨간 그릇에 담아두라”고 한다. 빨간색에 대한 회피본능이 있어서 손이 덜 간다는 것.

와인 값이 실제보다 비싸다고 알려주면 뇌의 보상중추에서 혈류가 증가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했다는 정보를 주면 뇌는 실제보다 더 맛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식품회사들은 단맛을 내기 위해 아이스크림에 바닐라향을 첨가한다. 아주 낮은 온도에서는 혀의 맛봉오리가 단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냄새로 달콤함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후각적으로 잘못 디자인된 대표적 사례는 뜨거운 커피를 담은 종이컵의 플라스틱 뚜껑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커피향이 코의 앞부분(전비강)으로 전해지는 걸 막기 때문이다. 병이나 캔으로 음료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빨대로 마시는 건 최악이다. 커피향을 느낄 수 있도록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놓은 플라스틱 뚜껑, 윗부분이 통째로 분리되는 캔이 그래서 등장했다. 맥주, 와인의 풍미를 즐기려면 향이 머무를 수 있도록 잔을 가득 채우지 말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저자는 2011년 한국에서 시작된 ‘먹방’을 비롯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음식사진 등을 ‘푸드 포르노’라고 부르면서 알고 보면 위험천만하다고 경고한다. 푸드 포르노는 배고픔을 증대시키고,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퍼뜨리며, 푸드 포르노를 볼수록 체질량지수가 높아진다는 것. 혼자 먹는 밥, 즉 혼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혼밥은 영양 불균형, 나쁜 식습관을 초래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증대시킨다. 함께 먹어야 고루, 많이 먹을 수 있다.

기내식을 맛있게 먹기 어려운 것은 10㎞ 상공의 낮은 습도와 높은 기압 탓에 음식과 음료의 맛과 풍미가 30%가량 상실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공사들은 맛을 강화하기 위해 기내식에 설탕과 소금을 많이 넣었고, 지금도 기내식은 건강한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많은 항공사가 기내식 개선을 위해 유명 셰프를 영입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소리와 냄새, 분위기 등의 경험도 중요하다. 2005년 문을 연 몰디의 수중 레스토랑 ‘이타’는 해수면 5m 아래에 있고 ‘디너 인 더 스카이’는 지상 10m 높이에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저자가 개척한 가스트로피직스의 연구 성과들은 과학적 원리와 새로운 지식을 활용해 요리하는 모더니스트 셰프들과 식음료 기업들이 적극 활용하면서 음식문화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가스트로피직스를 알면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일 것 같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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