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칼럼니스트 리사/
패션 칼럼니스트 리사/
패션 칼럼니스트 Lissa Koo는 이화여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 파슨스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에뜨로 PR팀 등을 거쳐 12년 간 패션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2015년 자신의 첫 디자인 라인 SAKU New York (사쿠 뉴욕)을 선보임과 동시에 A’design Award 에서 패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이후 많은 국내외 연예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그녀 디자인 라인은 현재 CAAFD뉴욕 패션위크 소속으로 뉴욕 시내 5개 콘셉트 스토어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 총 8개 매장에 들어가 있다. 뉴욕 패션위크, 뉴욕 캡슐쇼, 파리 트라노이 등을 통해 세계 전역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패션을 하는 사람이라면 뉴욕에서의 생활을 한 번쯤은 꿈꾼다. 필자도 그랬다. 뉴욕으로 삶터를 옮긴 지 만 6년이 돼 간다. 10년을 채우기도 전에 스스로를 뉴요커라 부르기엔 좀 민망하긴 하지만, 뉴욕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애증의 레벨로 뉴요커라는 타이틀을 탈 수 있다면, 난 충분히 그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뉴욕을 특별하게 하는가. 어떤 매력이 '패션 피플', 일명 패피들을 끌어당기는가. 앞으로 뷰티텐에서 그 매력을 하나하나 풀어보려 한다.

내가 뉴욕에 처음 온 것은 대학 시절인 2003년 겨울이었다. 영어를 배우겠다고 어학연수를 온 내 눈에 비친 뉴욕의 첫 인상은 뜬구름 같았다. 아니, 지구를 벗어난 외계의 공간 같았다. 그냥 외국이 아니라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쓰며 사는 '외계국', 즉 외계의 나라였다. 그게 나의 첫 뉴욕이었다. 학교 선배들이 '파슨스'라는 패션스쿨에 다니는 걸 보며 참 신기하고 존경스럽기만 한 막연함 정도로 다가왔다. 그런 삶이 10여 년 후 내 삶이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삶의 터전을 뉴욕으로 옮기고 난 후에도 뉴욕은 전혀 패션의 도시가 아니었다. 한 블록마다 있는 홈리스들, 거리에 널리고 널린 쓰레기들....한 블럭에 한두 빌딩은 항상 공사 중이었다. 인테리어나 익스테리어라고는 딱히 말할 것도 없는, 옆 테이블과 다닥다닥 붙어 앉는 너무 불편하고 작은 레스토랑이 유명하다는 맛집이라니...한 마디로 뉴욕은 너무나 각박하고 차가워서 살기에 힘든 도시였다.

그러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3~4월이면 뉴욕은 선인장이 피워내는 귀한 꽃봉오리처럼 그 진가를 살며시 드러낸다. 3월 초 마지막 눈폭풍이 한 번 뉴욕을 쓸고 가면, 사람들의 옷이 하나 둘 가벼워지면서 뉴요커들은 "내가 이래서 여길 못 떠나" 하면서 또 다시 뉴욕과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

동경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온 한국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뉴욕 패션에 너무 실망했다고 했다. 하라주쿠처럼 개성이 강하고 재미있고, 자신을 드러낼 있는 옷을 입는 사람이 많을 알았는데 온통 블랙이라고 했다. 뉴욕 패션은 블랙이냐면서. 학생이 뉴욕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했다고 수도 있다. 뉴욕의 블랙을 우리 뉴요커들은 'Chic(시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뉴욕 패션의 겉핥기라고 있겠다.

뉴욕이야말로 TPO,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 에 따른 드레스코드가 확실한 도시다. 그만큼 TPO에 따라 드레스코드가 아주 세분화돼 있다. 뉴욕을 포함해 미국 전역은 파티 문화가 일상인 나라다. 평소에는 (jean) 셔츠만 입고 다니던 사람들도 멋있는 드레스를 사거나 빌려서 그 옷을 입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서 사실 현지인이 되지 않고서는 진짜 뉴욕의 패션을 몸소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한국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재미 없는 룩들을 선보이지만 각종 파티에서는 과감하고 패션리더다운 면들을 선보인다.

그래서인지 뉴욕에는 정말 파티가 많다. 이 사람들, 정말 노는 거 좋아한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파티들이 한 달에 한 번, 아니 일주일에 한 번씩 거창한 이름을 달고 여기저기서 사람을 들썩이게 한다. 4월을 앞둔 뉴요커들은 지금 '코첼라룩'을 한창 검색 중일 것이다. 코첼라란 매년 4월 팜스프링이라는 서부 사막 지역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뮤직 페스티벌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몇 달 전부터 코첼라 티켓 구하기 열풍이 시작된다. 코첼라가 임박한 4월 초가 되면 암표시장에서 정상 가격의 3~5배나 되는 표들도 줄을 서서 산다. 패션과 파티에 민감한 뉴요커들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4월이면 아직은 추운 뉴욕이라 뉴요커들은 이 때 짧은 바지와 탱크 탑을 열심히 싸 들고 조금 이른 여름을 맞이하고 오는 것이다.

글=리사 쿠/ 정리=태유나 기자 /사진=뷰티텐 DB you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