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도전과 청춘의 실화 13년'… 서사가 된 무한도전

한 프로그램의 종영이 2주 넘게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공식 발표 전부터 추측성 기사들이 잇따랐고, 확정 후 네티즌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오는 31일 13년 만에 막을 내리는 MBC 예능 ‘무한도전’ 얘기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른 프로그램들이 종영될 때와는 사뭇 다르다. 주요 시청자였던 20~30대 팬들은 “내 청춘이 다 끝난 느낌” “함께 성장해 왔는데 끝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청춘’ ‘성장’ 같은 단어들이 자주 언급되는 건 단순히 13년이란 시간을 같이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작품에 자기 스스로를 투영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한도전을 지금까지 이끌어온 원동력도 콘텐츠 수용자의 적극적인 감정 이입이었다.

이런 투영이 가능했던 건 무한도전이 ‘실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했다. 매회 콘셉트 정도만 각본을 짜고, 나머지는 출연진의 실제 모습과 대화를 중심으로 제작됐다. 서로가 주고받는 농담은 물론 연애, 결혼 얘기 등도 ‘리얼’이었다. 대중들은 이를 처음 접하며 신선함을 느꼈고 13년이란 긴 시간이 쌓이면서 감정 이입의 정도도 커졌다. 그리고 축적된 실화 563회분은 하나의 큰 서사를 만들어냈다. 각 멤버들은 자신들 모습 그대로 캐릭터가 됐다. 매회 전혀 다른 포맷으로 진행됐지만 대중들은 개별 캐릭터의 활약과 조합 속에서 연속성을 띤 이야기 줄기를 스스로 그려내며 프로그램을 따라갔다. 아니, 함께했다는 게 더 적절하다.

대중의 공감은 무한도전을 막강한 브랜드로 만들었다. 참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김태호 PD는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됐다. 원년 멤버인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는 물론이고 최근 합류한 양세형과 조세호도 인기를 끌었다. 잭 블랙, 티에리 앙리, 스티븐 커리 등 해외 유명인들이 잇따라 이 프로그램을 찾은 것도 브랜드의 힘이었다.

국내 인기스타들도 무한도전 출연을 선호했다. 매회 광고도 완판됐다. 15초짜리 광고 단가를 135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매주 5억4000만원씩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간접광고를 포함하면 연간 3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이쯤에서 13년이란 오랜 시간 실화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해진다. 아마도 ‘도전’이란 키워드 덕분 아니었을까. ‘도전’이란 콘셉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이 프로그램 이후 나온 수많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처음엔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하나의 구심점 없이 결국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다루는 데 그치는 작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이름 그대로 도전이란 큰 틀 안에서 ‘고난-갈등-연대-극복’의 흐름을 따르며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냈다. 도전이 실화를 서사로 잇는 역할까지 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토리의 원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서사 안에서 대중들은 스스로를 발견했다. ‘지하철과 100m 달리기’ ‘목욕탕 욕조와 물 빼기 대결’ 등 각종 무모한 도전부터 봅슬레이, 가요제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치열하게 준비하는 과정을 보며 ‘나도 뭔가 해보고 싶다’는 열정을 품기도 했다. 직장인들의 모습을 다룬 ‘무한상사’ 시리즈를 통해선 슬픈 자화상을 엿봤다. 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을 찾고 역사를 랩으로도 표현하는 역사 특집을 통해 우리가 종종 잊고 살았던 과거도 되돌아봤다.

로버트 매키 서던캘리포니아대 시네마텔레비전학 교수는 저서 《스토리》에서 “이야기는 살아가기 위한,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다. 대중들은 콘텐츠 서사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를 위한 의미를 발견하려 한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은 여기에 충실했고 시청자들에게 그 이상을 선사했던 것 같다. 방송은 아쉽게도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남을 것이다. 우리의 실화가 담긴 그들의 실화였기에. 특히 젊은 날 무한도전을 통해 위로받았던 청춘들에겐 더더욱.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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