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외길 묵묵히 걸어온 박대성 화백

내달 4일까지 인사아트센터서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다'전

몸으로 체험한 전통 문화의 혼
수묵 담채로 생생하게 보여줘
박대성 화백

박대성 화백

1945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한국화의 대가’ 박대성 화백(73)은 6·25전쟁 때 인민군의 칼에 아버지를 여의고, 자신은 왼손을 잃었다. 제도권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열여덟 살 때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한 서정묵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끊임없는 연습으로 묵화는 물론 서예, 고서까지 숙달했다.

서른 살 때 수묵화의 본고장인 중국 고미술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대만으로 건너가 1년간 유학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에는 미국 뉴욕 소호에서 1년간 머물며 현대미술의 흐름을 몸소 체험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여덟 차례 수상할 정도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그는 미술 인생 내내 통일신라시대 화가 솔거를 꿈꿨다. 풍광 너머에 숨겨진 역사, 문화와 대화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한국화의 현대적 변화를 실험했다.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대성 화백의 회고전에 전시된 ‘효설’.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대성 화백의 회고전에 전시된 ‘효설’.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 화백의 회고전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다’는 붓을 곧추세워 한국화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던 그의 꿈과 열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독창적인 실경산수화를 비롯해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 추사체처럼 조형미가 넘치는 글씨 등 전시장 5개 층을 꽉 채운 작품 100여 점은 ‘땀의 숙성’을 통해 영근 대표작이다.

18일 전시장에서 만난 박 화백은 “그림을 통해 몸의 불편에서 해탈하고 싶었다”며 “이번 전시는 내 일생을 다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화백 그림의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체화된 한국적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전통의 재료를 과감하게 화폭에 투입하는 것이다. 솔거를 비롯해 청자와 백자, 추사와 겸재의 작업을 모델로 삼아 붓과 먹이 범벅된 맑은 화면을 만든다.

그의 실경산수화는 이런 특징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7m짜리 대작 ‘효설(曉雪·새벽에 내리는 눈)’은 눈 덮인 불국사와 석탑을 배경으로 경주가 품은 문화의 혼과 역사를 생생하게 녹여냈다. 절제된 구도뿐 아니라 먹을 머금은 바탕 위에 색채를 떠오르게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숨겨진 역사에서 발견되는 신선함, 붓끝에서 나오는 생명력, 예측을 불허하는 조형성, 길게 물고 늘어지는 헤맴의 깊이가 살아 있다. 신작 ‘노매(老梅)’는 에너지를 내뿜는 듯한 선묘에서 수묵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간략하고 대담하게 붓을 움직여 고목에 핀 매화와 가지를 머리카락을 쪼개듯 섬세하게 그렸다. 활짝 입을 벌린 꽃과 꿈틀거리는 듯한 가지, 노란 해가 하나로 얽힌 형상은 수묵의 경지를 보여준다.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수묵으로 형상화한 ‘금강화개(錦江花開)’는 붓털 하나하나에 긴장을 불어넣어 사실과 추상의 경계를 한 화면에 아울렀다. 치솟은 절벽의 끝에는 기암절벽 뒤로 은밀히 얼굴을 내미는 하늘, 폭포의 발원지 좌우로는 칼날 같은 바위들을 수묵으로 버무렸다. 검은 먹을 화면 구석구석에 짓이기고, 두껍게 쳐올린 화폭은 우리 인생사처럼 구불텅구불텅 요동친다. 작가는 “금강산의 풍경을 잘게 쪼개 거대한 모노크롬(단색)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중국 유명 서예가들의 작업을 ‘그륵법’(대상의 윤곽선을 파악해 그린 뒤 색을 입히는 방법)을 통해 그려낸 작품들은 ‘서법을 먼저 익혀야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강조한 그의 화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1999년 작업실을 서울에서 경주로 옮긴 그는 ‘서(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김생, 김정희, 마오쩌둥, 갑골종정 등의 글씨를 연마했다. ‘서’에 대한 관심은 ‘서’ 자체의 조형적 탐구로 이어져 작품 안에서 이전과 눈에 띄게 다른 선의 변화로 나타난다.

그는 동굴벽화가 글씨가 되는 과정을 ‘인류 최후의 디자인’이라고 했다. 상형에서 글씨가 되는 과정을 거슬러 글씨에서 상형이 되는 과정을 바둑 복기하듯 화폭에 펼쳐냈다. “서양의 드로잉은 이 맛을 못 따라 오죠.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걸림 없이 원만하게 하나로 융합되는 원융(圓融)정신이 필요합니다. 요즘 그림들이 뿌리 없는 허울 같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죠.”

그는 “전통 수묵과 담채를 구사한 한국화가 촌스럽고 흔한 것으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제대로 ‘요리’하면 현대화단의 세계적 조류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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