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실수 - 전윤호(1964~)

[이 아침의 시] 즐거운 실수 - 전윤호(1964~)
목욕하려고
거품 비누 풀었는데
욕조 마개 막는 걸 깜빡했다

배수구 안에서는
비눗방울에 미끄럼을 즐기고
하수도는 물때를 벗겼겠지

어차피 이 세상도 한 거품
방울 하나에 한 우주일 뿐
때가 되면 반짝반짝 날아가겠지

시집 《봄날의 서재》(북인) 中


목욕하는 일은 즐겁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피로가 저절로 풀리니까요. 거품은 피고, 나는 목욕탕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욕조 마개를 막아야 하는데 그걸 깜박했네요. 그 실수 하나가, 즐거움을 주네요. 비눗방울이 미끄럼을 즐기고, 하수구의 물때를 벗겨주는 일을 하는 게지요. 목욕하다 보면 내 몸은 봄빛으로 반짝거리겠지요. 입춘이 막 지났으니까요.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