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땅… 태고의 신비와 마주하다
도우 베야짓(Dogu Bayazit)은 이란과 인접한 동부 터키의 국경도시다. 인도, 파키스탄, 이란 방면에서 터키로 오는 여행자와는 반대로 유럽에서 터키를 거쳐 아시아로 가는 여행자가 거쳐 가는 중간 지점이기도 하다. 아르메니아인이 살던 때에는 ‘바즈갈’이라 불렸고, ‘베야짓’이라는 이름은 14세기 이후 붙여졌다 한다. 여기에 이스탄불의 베야짓 지역과 구별하기 위해 동쪽이라는 뜻의 ‘도우’를 앞에 붙여 도우 베야짓이 됐다.
아라라트 산 기슭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쿠르드 족 마을 사람들
아라라트 산 기슭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는 쿠르드 족 마을 사람들
노아의 방주가 머문 아라라트 산

‘동쪽의 흰 마을’이라는 뜻의 도우 베야짓은 여행의 중간 기착지로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터키에서 가장 높은 아라라트 산과 동부 아나톨리아의 상징인 이삭 파샤 궁전, 다른 지방과는 사뭇 다른 동부 산악지방의 험준한 자연을 탐방하는 전초기지라는 면에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최근 들어 아라라트 산의 트레킹이 활성화되면서 여름철 등산을 겸한 여행자도 속속 늘어나고 있는데 근처에서 지진이 종종 발생하고 있어 다소 주의를 요하는 곳이기도 하다.
국경을 넘어 도우 베야짓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아라라트 산
국경을 넘어 도우 베야짓으로 가는 도중 바라본 아라라트 산
이란 쪽에서 국경을 넘어오거나 중부 지역에서 장거리 버스를 타고 이란으로 넘어가기 위해 이곳 변방의 조그마한 도시 도우 베야짓에 들리든 간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아라라트 산이다. 이 산은 만년설을 이고 있는 5000m가 넘는 원추형 산이다. 터키, 이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을 사이에 두고 신비스러운 자태로 도우 베야짓을 내려다보고 있다. 옆에 좀 더 낮고 작은 새끼 아라라트 산을 거느리고 있는 이 산은 성경에 기록돼 있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어 많은 사람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근세에 노아의 방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1978년 정식 발굴되기 시작했다. 1987년 터키 정부에서 아라라트 산 인근의 산비탈에서 발견된 흔적을 노아의 방주로 인정해 더욱 유명해진 산이다.

120m 정도 배 모양의 흙무더기 선명

박물관에 전시된 노아의 방주 흔적을 연구한 자료
박물관에 전시된 노아의 방주 흔적을 연구한 자료
노아의 방주를 찾아간 그날도 아라라트 산의 신비한 자태가 굽어보면서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가파른 산비탈의 비포장 길을 돌고 돌아 도달한 곳에는 조그마한 건축물 하나가 외롭게 서 있었고 주변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수천 년의 세월을 찾아온 지금 어찌 엄숙하지 않겠으며 가슴 설레지 않겠는가. 잠시 후 어딘가에서 홀연히 나타난 노인 한 분이 있었다. 그곳 관리인이라고 하지만 뭔가 깊은 사연과 비밀을 간직한 듯한 분위기를 지녔다. 그분의 안내를 받아 산을 바라다 보니 저 멀리에 노아의 방주(?)가 잠들어 있었다. 120m 정도 길이의 배 모양 흙무더기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모습이다.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모든 것은 삭아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에 쌓여 온 흙먼지가 고스란히 배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있다면 아라라트 산 정상 부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믿거나 말거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성서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많은 것이 종교적 차원을 뛰어넘어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연구돼야 한다. 이 방주의 흔적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배 모양의 흔적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배 모양의 흔적
운석 낙하로 생긴 메테오르 홀 이채

노아의 방주가 있는 곳은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특별 허가를 받지 않으면 아라라트 산 입산은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터키로부터 분리 독립을 주장하면서 무장 투쟁을 하는 쿠르드 족의 무장 세력이 은거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경을 넘나들면서 밀수 행위가 성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이 도우 베야짓 인근 광야에서는 터키 군인들이 중무장한 채 훈련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요소마다 군인과 경찰의 검문검색이 엄중하다.
1920년 운석이 떨어져 생긴 메테오르 홀
1920년 운석이 떨어져 생긴 메테오르 홀
하지만 삼엄한 국경 분위기 속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또 하나 있다. 이란과의 국경이 지척으로, 시내에서 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넓은 들판에 내려서는 순간 땅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메테오르 홀’이라 부르는 것으로 1920년에 운석 낙하로 생긴 구멍이다. 지름이 35m, 깊이가 60m쯤 된다고 하는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근처에 세워둔 안내판에 의하면 운석이 떨어질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주변 땅이 요동치면서 생긴 구멍도 이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당시 현장을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항간에 그 운석의 작은 조각 하나만 주어도 횡재라는 말이 있어서 두리번거려 보지만 발견할 수는 없었다.

초현실적인 풍경의 이삭 파샤

도우 베야짓을 거론하는 데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변두리 높다란 언덕 위에 서 있는 ‘이삭 파샤’라는 건축물이다. 아르메니아 양식의 이삭 파샤 궁전은 17~18세기 이 지역을 다스리던 쿠르드인 ‘이삭 파샤’ 총독이 자신의 아버지가 왕이었던 때 착공했다. 워낙 척박한 환경 때문에 무려 99년이나 걸려 지어진 곳이다. 지금은 상당 부분이 러시아 지배를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의 상징인 이삭 파샤 궁전
터키 동부 아나톨리아의 상징인 이삭 파샤 궁전
던 시기에 파괴돼 복원되고 있다. 특히 금으로 만든 화려한 철문이 유명한데 지금은 러시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고 해서 애석하게 만든다. 또 이 궁전이 최근 들어 많이 복원됐다고는 하나 아직도 지붕이 무너지고 창문이 떨어져 나간 곳들이 있어 새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정도로 쇠락한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새겨진 부조들이나 창문을 통해 보이는 주변의 산세와 모스크가 보이는 풍경이 초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어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붙들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가. 수많은 여행자들이 터키 동부의 상징이자 최고의 볼거리는 이곳 도우 베야짓의 이삭 파샤 궁전이라고 하면서 장거리 버스 여행길을 마다하지 않고 몰려든다. 그것은 단지 이 궁전의 건축물만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닌 듯하다. 주변을 아우르고 있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에 매료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건물의 난방은 따뜻한 공기가 각 방으로 관을 통해 전달되는 중앙 공급식이다. 북쪽에 있는 후궁들의 거처 하렘의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주위 산들과 벌판의 경치는 오묘하다. 베일을 쓴 후궁들은 바깥세상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삭 파샤 궁전 입구
이삭 파샤 궁전 입구
신비한 자태의 아라라트 산과 노아의 방주, 이삭 파샤 궁전 등이 어우러진 이곳 도우 베야짓은 오늘도 쿠르드 족이 민족 차별의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간다. 도우 베야짓은 변방의 조그마한 도시에 불과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여행자를 빨아들이는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아라라트 산 밑의 조그마한 쿠르드 족 마을에서 만난 어린 꼬마들의 눈망울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도우 베야짓에 대한 인상이 꿈속에서 일어난 허망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일 게다.

도우 베야짓=글·사진 박하선 여행작가 hotsunny7@hanmail.net

여행 메모

쿠르드 여인
쿠르드 여인
도우 베야짓은 터키 동쪽 끝에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의 여행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해야 한다. 카파도키아 지역에서는 버스로 14시간 이상이 걸리며, 이란 쪽에서 넘어올 때는 국경마을 ‘바자르간’에서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국내 항공을 이용하려면 이스탄불이나 앙카라에서 동쪽의 가장 큰 도시인 ‘반(Van)’으로 날아간 뒤 다시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요즘은 국경 쪽이 시리아 문제로 어수선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시내에서 볼거리가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꽤 되므로 현지 여행사들의 투어에 참가하는 것이 좋다. 비용 문제를 생각하면 다른 여행자들과 팀을 구성하는 것이 싸다. 시내 여기저기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있고 동쪽 좀 떨어진 곳에는 캠핑장도 있지만 시내로 나올 때 불편한 것이 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