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10대 후반 고국을 떠나 일본과 독일, 미국을 떠돌며 글로벌 예술가로 살았다. 백인 중심의 서구 우월주의에 맞서 뚝심으로 ‘백남준표 아트’를 밀고 나가며 미술 한류의 전사처럼 싸웠다. 다자간 소통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기계와 공존하는 ‘사이버네틱 미래’를 예견하고 예술적 비전을 제시한 그는 사후에도 가장 ‘혁명적인 아티스트’로 우리 곁에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제값 못 받는 백남준 작품… '테마주' 단색화에 밀렸다
백남준이 타계한 지 29일로 12년을 맞는다. 하지만 올해는 그의 예술혼을 알리는 전시회가 예년에 비해 뜸하다. 작품 가격 역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첨단문명의 질주와 인간성의 상실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평생을 매달린 그였기에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백남준의 큰 조카이자 법적 대리인인 켄 백 하쿠다가 2014년 11월 가고시안갤러리와 백남준의 전속계약을 맺은 이후 한동안 전시회가 활기를 띠었지만 작품 가격에는 여전히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백남준 작품값, 이우환의 4분의 1

백남준이 국제 화단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이고 이미 작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저평가돼 있다. 국내외 화랑가와 경매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크기와 작품성에 따라 점당 1억~7억원, 판화는 200만~300만원, 드로잉은 600만~700만원, 페인팅은 50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단색화가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는 물론 일본의 무라카미 다카시·구사마 야요이, 중국의 쩡판즈·장샤오강 등 아시아권 작가와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1995년작 ‘스태그’가 작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6억6000만원에 팔려 백남준 작품 가운데 국내 낙찰 최고가를 기록했다. 생존 작가로는 유일하게 국제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우환의 작품 ‘점으로부터’가 경매 최고가 24억원을 기록하고, 단색화가 정상화와 박서보의 작품이 10억~14억원대에 거래된 것에 비하면 국제적인 명성이 무색하다.

가고시안갤러리의 전속작가 영입도 가격 반등에 힘을 보태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옥션, K옥션 등 국내 경매에서 백남준의 작품(판화 회화 사진 포함)은 82점 중 56점이 팔려 낙찰총액 23억원(낙찰률 68%)을 기록했다. 김환기(253억원)의 11분의 1 수준에 그쳤고, 단색화가 정상화(58억원) 박서보(53억원)의 50%에도 못 미쳤다. 출품작은 1998~2005년(5점)에 비해 16배 이상 늘었지만 가격대는 게걸음이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백남준 작품의 저평가 현상에 대해 “관리와 보관이 어려운 데다 잦은 고장으로 시장 거래에 한계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업들에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유명 기업들이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등 자국 작가들을 앞다퉈 소장하는 모습과 대조적이란 얘기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도 “최근 국내 화단에 김환기와 단색화가 ‘테마주’로 부각되면서 백남준이 시장에서 소외된 게 사실”이라며 “향후 작품가격도 3억~7억원대의 보합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하이 하오미술관 백남준 조명

미술계도 그의 예술을 재조명하는 데 소극적이다. 국제 화단에선 중국 상하이 하오미술관이 백남준 기획전을 마련한 게 유일하다. 하오가 오는 5월까지 백남준과 독일 태생의 미국 전위예술가 요셉 보이스 작품을 소개하는 ‘선지자의 편지’(Lettres Du Voyant)전에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퍼포먼스, 비디오 및 미디어 클립, 비디오 조각 등 백남준의 작품 55점이 나와 있다. 한·중 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 이후 처음 열리는 한국 작가의 대형 전시라는 의미도 있다.

국내에서는 경기 용인에 있는 백남준아트센터가 다음달 4일까지 ‘비상한 현상, 백남준’전을 열고 권위적인 예술을 관람객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정신을 조명한다. 평창올림픽플라자 문화아이시티(ICT)에서 열리고 있는 ‘평창 빛’에는 백남준의 166개 텔레비전 브라운관으로 만든 초대형 비디오 설치 작품인 대표작 ‘거북’이 관람객을 반긴다. 서울 삼성동 봉은사는 29일 낮 12시 백남준의 12주기를 맞아 추모 의식과 함께 창(이미리), 대금 독주(한태규), 국악 합주(봉은국악합주단), 살풀이(김은경) 등 다양한 문화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