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베끼고, 부풀리고…기억의 '제멋대로' 본능
실험 대상자들에게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하는지 조사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 뒤, 가짜 기억을 슬쩍 끼워 넣는다. “당신이 다섯 살 때 가족 친구의 결혼 피로연에서 뛰어놀다가 테이블에 놓인 화채 그릇을 신부의 부모에게 몽땅 쏟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기억하시나요?” 또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떠올려 보라고 한다.

1995년 미국 웨스턴워싱턴대에서 이뤄진 ‘화채 그릇 쏟기’ 실험이다. 이때 참여자의 25%는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몹쓸 기억력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거짓 기억의 실체를 낱낱이 알리고 뇌 작동의 원리와 오류 과정을 밝힌다. 저자는 법정 심리학자이자 기억 연구가인 줄리아 쇼 영국 런던사우스뱅크대 범죄학과 교수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는 언제일까. 태어난 직후 있었던 일들이 기억난다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거의 사라진다. 10~30대의 기억이 주로 머릿속에 남는다. 이 중 10대 후반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으며, 20대 초반부터 기억의 양이 줄어들기 시작해 그 후 수십 년 동안 같은 수준을 유지한다. 결국 우리는 10대와 20대를 가장 잘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기억들조차 왜곡됐을 가능성이 높다.

기억의 오류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특히 시각 정보를 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래의 정보가 사라지거나 변형된다. 범인의 얼굴을 봤던 사람이 인상착의를 떠올리면서 말로 이를 옮길 때 잘못된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어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상세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어 이를 생략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다 보면 또 다른 잘못된 기억이 생길 수 있다. ‘기억 동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본 정보를 자신의 기억으로 착각하고, 실제 자신이 목격했거나 겪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월 착각’도 일어난다. 자신의 장점을 과대평가하면 기억도 포장된다. 자신의 장점을 생각하기 위해 잘했던 일들만 기억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성과는 무시하게 된다. 예를 들면 집에서 수많은 집안일을 혼자 했다고 생각하고 ‘좋은 배우자’라고 스스로를 평가하지만, 실은 배우자에게 다른 일들을 떠맡긴 것을 잊어버리거나 축소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때로 아주 감정적이거나 잘못된 기억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그러면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에 보다 충실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