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프랑스 작가 폴린 퀴르니에 자르댕의 ‘그로타 프로푼다, 아프로폰디타’를 감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 프랑스 작가 폴린 퀴르니에 자르댕의 ‘그로타 프로푼다, 아프로폰디타’를 감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세기 영국에는 식민지 개척, 산업혁명 등으로 경제적인 여유와 함께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그랜드 투어(Grand Tour)’라는 유럽 여행이 유행했다. 상류층 자제들이 주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적지와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세련된 예법의 도시 파리를 필수 코스로 여행하며 외국어와 역사, 예술을 배웠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그림, 조각, 공예품 등 추억이 담긴 물건을 사들고 와 배움과 발견의 즐거움을 오래도록 간직했다.

유럽에서 대형 미술축제가 잇달아 열리며 ‘21세기형 그랜드 투어’가 시작됐다. 세계 최고 권위의 격년제 미술축제인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가 지난 13일부터 6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갔고, 독일에서는 현대미술축제 카셀도쿠멘타와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다음달 10일 동시에 개막한다. 스위스의 세계 최대 미술장터 아트바젤(6월15~18일)에도 벌써 세계인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 해에 이들 행사가 동시에 열리는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여기서는 미술품 1만여 점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세계 각국의 미술애호가 수백만 명이 행사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의 뛰어난 현대미술 작품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아트투어 상품도 등장해 눈길을 끈다.

◆독일이 황금사자상 싹쓸이

미술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오는 11월26일까지 베네치아시 카스텔로공원과 옛 조선소 자리인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펼쳐진다.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선임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이 총감독을 맡아 이끄는 올해 행사의 주제는 예술 만세라는 뜻의 ‘비바 아르테 비바(Viva Arte Viva)’다. 57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마셀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51개국 120명)와 세계 각국이 자체적으로 선보이는 국가관(85개국) 전시,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이 승인한 별도 행사인 병행 전시로 나눠 이뤄진다.

올해 황금사자상은 독일 국가관과 독일 작가 프란츠 에르하르트 발터(77)에게 주어졌다. 한국 작가로는 본전시에 김성환과 이수경, 국가관 전시에는 코디 최와 이완이 참가해 한국 현대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유럽의 미래사회, 시각예술로 조명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미술품을 보여주는 아트페스티벌도 마련된다. 5년 주기로 독일 중소도시 카셀에서 열리는 ‘제14회 카셀도쿠멘타’는 유럽 사회의 변화와 미래상을 시각예술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행사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 행사는 폴란드 출신 큐레이터 아담 심칙이 총감독을 맡아 ‘아테네에서 배우기’를 주제로 그리스 아테네(7월16일까지)와 독일 카셀(6월10일~9월17일)에서 시차를 두고 열린다.

독일 북서부의 대학도시를 무대로 하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올해를 놓치면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1977년 시작해 올해로 5회째를 맞은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독일 소도시 뮌스터에서 열리는 야외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캐스퍼 쾨니히 쾰른 루트비히미술관장 등이 예술감독을 맡아 니콜 아이슨만 등 쟁쟁한 아티스트 35명의 신작을 공개한다. 도심 곳곳을 거닐며 전시된 조각, 설치작품을 시간 제한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관람료는 없다.

◆슈퍼리치들 다음달 스위스 바젤 집결

세계 미술시장에서 갈수록 비중과 위상이 커지는 아트페어(미술품 장터)도 주목된다. 슈퍼리치들이 지갑을 여는 제48회 스위스 아트바젤은 다음달 15일부터 나흘간 스위스 바젤 메세플라츠에서 열린다. 아트바젤위원회의 허가를 받은 미국 독일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 40여개국 화랑 300여 곳이 참가해 유명화가 작품 4000여 점을 전시·판매한다. 한국에서는 국제갤러리와 PKM갤러리가 참가한다.

한국미술경영연구소와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미술애호가와 유럽 여행객을 겨낭한 아트투어 상품을 출시했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