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야만성 날카롭게 풍자
당시 프라하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역사적 사건에 상상력을 더해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을 추적한 로랑 비네의 장편소설 《HHhH》(황금가지)가 번역, 출간됐다. 프랑스 태생인 비네는 이 작품으로 2013년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공쿠르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를 뒤지고 관련자를 인터뷰하는 등 꼼꼼하고 폭넓게 취재했다. 책의 3분의 2는 사료를 바탕으로 암살사건을 재구성한 부분이어서 다큐멘터리처럼 읽힌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당시 있었을 법한 일’을 상상한 소설이 나온다. 저자가 이 작품을 ‘토대 소설(infra novel)’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점령군 사령부는 암살범 색출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 한 마을 주민 전체를 몰살하기도 한다. 하이드리히를 죽인 범인은 체코 망명정부가 투입한 전투요원 2명이다. 이들은 자신이 한 일로 무고한 사람 수천명이 죽었다며 자괴감에 빠진다. “하이드리히가 죽어서 나아진 일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자책한다.
그러나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두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암살 작전이 정당했다고 강조한다. 체코 전투요원의 순수한 헌신은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 이 사건으로 나치의 야만성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많은 나라가 반(反)독일 전선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가디언’은 이 작품에 대해 “밀란 쿤데라의 영향을 받은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인다”며 “기적 같은 용기의 가치를 그리고 있으며 힘이 넘치는 엔딩도 압권”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완전히 픽션을 재창조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실화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재구성하되 끝없이 코멘트를 붙였다”며 “독자를 역사적 사건으로 더욱 가까이 데려가는 작품”이라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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