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층 조립 완료, 공정 절반 마쳐…"내년 완성 목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익산 미륵사지의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5년 콘크리트로 보수해 탑의 모습이 크게 훼손된 상태였다.

문화재청은 2001년부터 역사적 가치와 진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탑을 해체했고, 2009년에는 1층 심주석(心柱石·탑의 중심축이 되는 돌)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사리장엄을 발견했다.

탑을 다시 쌓아 올리는 복원 공사는 2013년 시작됐다.

9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미륵사지 석탑은 지난달 1층 조립을 완료하고, 현재 2층 복원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공정은 절반 정도 마친 상황이다.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1천300여 년 전에 만든 석탑이어서 부재가 많이 약하다"라며 "부재도 규격이 모두 달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복원하기 정말 쉽지 않은 탑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석장(石匠) 보유자 두 분도 다시 배워가며 작업한다고 할 정도로 난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 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구조가 목탑과 흡사한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마치 나무를 짜 맞추듯, 수많은 돌덩어리를 조립해 쌓아야 한다.

외부에 노출된 부재만 580여 개이고, 내부에 있는 돌을 모두 합치면 약 2천800개에 이른다.

목탑의 영향은 사방에 있는 문에서 중심부의 심주석까지 십자형 통로가 조성됐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건물 중앙에서 끝으로 갈수록 더 높은 기둥을 쓰는 목조건축의 귀솟음 기법처럼 미륵사지 석탑도 모서리 부분의 부재가 조금 더 높다.

김 학예연구사는 "미륵사지 석탑의 부재는 나무 판재처럼 상당히 얇고 넓어서 하중을 잘 버티지 못한다"면서 "모든 부재는 자리를 잡기 전까지 몇 번씩 조립을 거듭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의 원칙은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 원래 있던 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전통 기법으로 쌓되 보존처리를 하거나 돌의 강도를 높일 때는 현대 기술을 쓴다는 것이다.

김 학예연구사는 "일부 부재는 옛 돌과 새 돌을 정교하게 합쳐서 사용한다"며 "석탑 복원이 끝나면 외부를 기준으로 옛 돌이 차지하는 비율이 62%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 수치는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륵사지 석탑의 옛 부재는 절터 뒤편에 있는 미륵산에서 채취한 것이고, 새로운 부재는 주변에 있는 익산 황등면에서 가져와 쓴다"며 "옛 돌의 강도는 새 돌의 절반 정도로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부재가 울퉁불퉁해서 쌓으면 빈틈이 많이 생긴다"며 "이런 틈을 흙으로만 채우면 비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천연 광물, 모래, 황토를 배합한 무기질 재료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 초기부터 층수 논란이 일었다.

해체 전처럼 6층으로 쌓을 것인지, 새로운 부재를 과도하게 사용해 1992년 다시 세운 미륵사지의 동쪽 석탑처럼 9층으로 올릴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문화재청은 줄곧 6층까지만 복원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대해 김 학예연구사는 "해체 과정에서 7층 이상의 부재로 추정되는 돌이 나오지 않았고 석탑의 정확한 층수를 알려주는 기록이 없다"며 "구조적 측면에서도 9층까지 복원하면 돌에 가해지는 하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복원이 끝난 석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연구소는 내년이면 석탑 조립을 완료하고, 2018년이면 석탑을 둘러싼 덧집 철거와 주변 정비까지 끝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석탑 공사 현장은 공개돼 있어 누구나 덧집 안에 들어가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김 학예연구사는 "약 20년에 걸친 미륵사지 해체와 복원은 건축 문화재 수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복원된 석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