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필요성은 동의…과도한 개입은 역효과 낼 수도"

미술계는 6일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품 유통 투명화 대책'에 대해 과도한 개입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위작 논란을 해소하지 못한 채 시장만 위축시킬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미술품 유통 투명화를 목적으로 화랑이나 경매사, 감정업체에 등록 또는 허가 절차를 밟도록 하고, 미술품 거래 이력 관리를 의무화하는 등 각종 규제만 더하면 가뜩이나 불황인 미술시장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체부가 이번 대책 발표에 앞서 개최한 정책 토론회에 패널로 참가했던 캐슬린 킴 변호사는 "위작 논란은 미술시장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더 많이 벌어지는 일"이라며 "화랑이나 감정업체를 등록하고, 감정과 유통을 분리한다고 해서 위작 문제가 불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위작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이렇게 세세하게 개입하면 시장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정위원들의 단체인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의 김인아 실장도 "등록제를 통해 자격 있는 기관이 감정하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렇게 법 제정까지 추진할 필요가 있나라는 부분에서 의문이 든다"며 "천경자·이우환 화백 사건으로 유통 투명화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은데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면 이렇게 논란이 되는 사안이 많지도 않다"는 점을 그 이유로 밝혔다.

국가 차원에서 미술품 감정 전문 연구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위작 문제 해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실장은 또 "국가 기관이라면 과연 위원들의 진위 판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술시장의 안정적 성장 발판이 궁극적 목적인 이번 대책의 세부 규정이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아트사이드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동재 대표는 "아직 미술품 구매가 대중화되지 않았고 일부 애호가들 덕에 시장이 돌아가는데 이렇게 거래 이력 관리를 의무화하면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가 미술품을 샀다는 걸 신고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구매를 기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문체부는 구매자 정보는 등록 의무에서 제외했다고 밝혔으나 위작 논란 발생 등 필요 시 해당 화랑을 통해 역추적은 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구매자 정보가 노출될 여지가 있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이 대표는 정부 정책이 정작 화랑이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원책이 거의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내년 하반기부터 500만원 이하 미술품 구입 시 장기 무이자 할부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다소 도움은 되겠지만 이것만으로 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박우홍 한국화랑협회 회장은 "미술품 유통의 한 축을 담당하는 화랑의 핵심 요구사항이 빠져서 아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박 회장은 "미술시장을 왜곡되는 이유 중 하나가 화랑과 경매 겸업으로 파생되는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인데 화랑과 경매의 겸업 금지를 추진하겠다고 하다가 빠져서 아쉽다"고 말했다.

미술품 이력을 화랑이 자체적으로 관리토록 한 데 대해서는 "어느 수준에서 이력을 정리해야 하는지, 또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은 어떻게 이뤄진다는 것인지 세부 내용이 없어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술품 위작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최대 5년 이하 징역,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명문화하는 안에 대해 이미 현행법에서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어서 추가 법 제정은 '옥상옥'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캐슬린 킴 변호사는 "사기, 사문서위조, 서명위조 등의 죄목으로 충분히 처벌 가능한데 굳이 이렇게 다시 특별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나 싶다"며 "법률로 유통에 개입하고 단속·관리하기보다는 차라리 감정 전문가 양성 등 지원책을 내놓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문체부 대책 중 전시와 판매를 병행하는 화랑과 전시 기능 없이 단순히 미술품 거래만 알선하는 기타 미술품 판매업을 나누고 기타 판매업체에 대해서는 '화랑'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하고, 경매사는 관련 있는 화랑이나 해당 화랑 소속 작가, 자체적으로 갖고 있던 작품 거래를 제한하는 등 '이해관계 상충 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의견도 있었다.

박우홍 화랑협회장은 "위작 문제는 화랑이 아닌 화랑을 빙자한 '어두운 조직'에서 불거진다"면서 "이런 곳들이 '화랑'이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하면 일반인들에게 미술품 거래는 화랑에서 해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줘서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경매사와 경매사 지분을 갖고 있는 화랑의 관계에 대한 오해가 계속돼 경매사 입장에서도 정부안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해관계가 있다고 판단되는 작품에 대해서는 도록에 표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공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정업계도 등록제를 도입한 안에 대해 큰 방향에서는 동의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인아 한국미술감정평가원 실장은 "등록제를 도입해 자격 있는 기관이 감정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하고 필요한 대책이지만 과연 현 실정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선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등록제를 할 만큼 감정 단체가 많을지 의문"이라며 "등록제에서 중요한 부분은 결국 기준인데 어떻게 그 기준을 세울지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luc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