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휴스턴심포니가 2012년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지휘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말러의 ‘천인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미국 휴스턴심포니가 2012년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지휘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말러의 ‘천인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교향곡은 이 곡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작품 ‘교향곡 8번’은 달랐다. 말러는 “이 작품의 소리는 인간이 아니라 태양과 우주의 소리”라며 “나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자찬했다. 라틴어 성가와 괴테가 쓴 ‘파우스트’의 음악극으로 구성된 이 곡은 클래식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이다. 1910년 독일 뮌헨에서 초연했을 땐 1000명이 연주·합창했다. 그래서 붙여진 새 이름이 ‘천인(千人)교향곡’이다.

◆1000명이 만드는 환희의 무대

임헌정 예술감독
임헌정 예술감독
오는 25일과 27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의 천인교향곡이 울려 퍼진다. 국내 최초로 1000명이 모두 무대에 선다. 국내 클래식 공연 사상 최대 규모다. 지휘자 1명, 솔리스트 8명, 오케스트라 141명, 합창단 850명이 무대에 오른다. 지휘를 맡은 임헌정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는 “1000명의 마음과 소리를 끌어모아 메마른 시대에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천인교향곡엔 말러 특유의 비극적인 색채 대신 환희와 희망이 가득하다. 말러는 1906년 휴가를 즐기다 멜로디가 폭포처럼 머릿속에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를 잊지 않으려 휴지 조각에 악보를 그렸을 정도였다. 1부는 성령의 빛과 사랑을 알리는 성가로 채워진다. 2부는 악마와 계약한 파우스트가 참회하고 구원받는 내용이 오페라처럼 펼쳐진다. 임 예술감독은 “예술의 본질은 사람을 착하게 만들어주는 것인데 여기에 딱 맞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천인교향곡이 국내에서 연주된 것은 일곱 번뿐이다. 많은 사람을 동원해야 하는 데다 연주시간도 1시간30분이나 걸려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서다. 이 곡은 400여명이면 연주할 수 있어서 그간 국내 공연의 최대 참가 인원은 500명에 그쳤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1000명이 참여하는 이번 무대가 전례 없이 성대한 클래식 공연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 예술감독은 ‘말러 전문가’다. 부천필하모닉을 맡았던 1999~2003년 말러 전곡을 연주했다. 천인교향곡을 두 번 지휘해 본 국내 유일한 지휘자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1000명 모두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만큼 각오가 남다르다. 그는 “세계 지휘자의 99%는 천인교향곡을 한 번도 지휘하지 못하고 죽을 텐데 이런 대작을 지휘할 기회가 주어진 것 자체가 큰 영광”이라며 “감사한 마음으로 음악가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합창 지휘는 이상훈, 솔리스트는 소프라노 박현주 손지혜, 테너 정호윤 등이 맡는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국립합창단을 비롯한 12개 성인합창단원 500명, 과천시립소년소녀합창단 등 7개 어린이합창단원 350명이 함께한다.

◆롯데콘서트홀의 웅장한 음향

19일 개관하는 롯데콘서트홀의 음향 시설은 1000명의 울림을 더 웅장하고 풍성하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롯데콘서트홀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이후 28년 만에 서울에 생기는 대규모 클래식 전용홀(2036석)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는 빈야드 구조로 설계됐다. 관객이 오케스트라를 둘러싸고 음악을 감상한다. 이 때문에 공간이 꽉 찬 느낌이 들고 더 생생하게 음이 전달된다.

국내 클래식 공연장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도 설치돼 있다. 천인교향곡도 파이프오르간의 장엄하면서도 신비로운 소리로 시작된다. 롯데콘서트홀 측은 “말러가 ‘모든 민족을 위한 선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의 의도에 충실하기 위해 1000명을 고집스럽게 추진했다”며 “100여년 전 뮌헨 초연 때 3000여명의 관객이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겠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