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정·다짐·보상 담겨야 제대로 된 사과
미국 정부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흑인을 대상으로 했던 매독 생체실험에 대해 1997년 공개 사과했다. 미국 사회는 소요사태 등 큰 후유증 없이 어두운 과거를 떨칠 수 있었다. 국내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큰 파장을 일으킨 옥시는 공개 사과를 했지만 되레 역풍을 맞았다. 시민들은 옥시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미국 언어학자 에드윈 L 바티스텔라는 《공개 사과의 기술》에서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의 다양한 공개 사과 사례를 분석했다. 언어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을 분석 도구로 활용했다. 저자에 따르면 완전한 사과는 잘못된 행위 이전과 이후의 자신을 분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전의 자신’은 거리낌 없이 비판하고 던져버려야 한다. ‘이후의 자신’은 도덕적으로 교화됐으며 처벌에 공감한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성공적인 사과 사례에는 △잘못된 행위에 대한 수치심과 유감의 표현 △규칙 위반에 대한 인정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할 거라는 약속 △피해를 배상하겠다는 약속 등이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대략적인 윤곽은 이렇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상황별로 사과의 모습은 크게 다르다. 때문에 저자가 변화무쌍한 현실에 언제나 적용될 수 있는 단일한 정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대신 다양한 성공과 실패 사례를 접하며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임기응변 능력을 키우도록 돕는다. 이를 위해 성공적인 사과의 원리를 분석하는 본문과는 별도로 다양한 공개 사과 사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코너를 각 장 말미에 마련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럴 때 요긴한 책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