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장마 - 김사인(1956~)
공작산 수타사로
물미나리나 보러 갈까
패랭이꽃 보러 갈까
구죽죽 비는 오시는 날
수타사 요사채 아랫목으로
젖은 발 말리러 갈까
들창 너머 먼 산이나 종일 보러 갈까
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비 오시는 날
늘어진 물푸레 곁에서 함박꽃이나 한참 보다가
늙은 부처님께 절도 두어 자리 해바치고
심심하면
그래도 심심하면
없는 작은 며느리라도 불러 민화투나 칠까
수타사 공양주한테, 네기럴
누룽지나 한 덩어리 얻어먹으러 갈까
긴 긴 장마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中


죽죽 긋는 비에 세상이 갇히기만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줄기찬 빗소리 때문에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나무들도 척추를 간만에 적신다. 무릇 뿌리 가진 것들은 온 힘을 다해 흙을 움켜쥐어 본다. 올해의 장마는 아직 저 남쪽으로 내려가 있다. 비다운 비가 그립다. 태양의 눈꺼풀을 잠시 꺼주는 장마! 장화 신고 가는 출근길! 빗소리가 발목에 감기고 있으니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소연 < 시인(2014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