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경기침체 내성만 키운 아베식 응급 처방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릴 만큼 장기 침체를 겪고 있던 일본. 2012년 총리로 취임한 아베 신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 가지 화살’ 정책을 들고 나왔다. 과감한 양적 완화, 재정지출 확대, 공격적인 성장 추진이다. 아베 총리는 세 가지 전략을 동시에, 반복적으로 실행하도록 했다. 그는 취임 당시 “화살 한 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세 개가 한 번에 부러지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효과는 그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일본은 장기 침체에서 ‘장기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네코 마사루 게이오대 경제학 교수, 고다마 다쓰히코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는 《일본병》에서 일본의 장기 쇠퇴를 ‘병(病)’으로 규정하고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내놓은 정책들이 어떻게 일본의 위기를 초래하게 됐는지 분석한다.

저자들은 단순히 경제학의 관점으로만 현상을 해석하지 않는다. 경제학과 생명과학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도입해 일본 경제의 병리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이들은 아베 총리가 불량 채권을 깨끗하게 처리하지 않고, 당장의 경기 부양책으로 금융 완화 등의 약을 계속 투여하면서 위기가 심해졌다고 분석한다. 균이 침투해 몸이 아플 때 병원에서 약을 투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균을 없애기 위해 항생제를 계속 투여하면 곧 내성이 생긴다.

이 때문에 보다 강한 약을 투여하는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언젠가 그 항생제에 대해 내성이 있는 병원균이 나타난다. 또다시 치료를 하기 위해 더 강한 항생물질을 사용하게 되고, 결국엔 내성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죽음에 이른다. 저자들은 “병원균이 생겼다고 항생물질을 사용하는 고정적 대응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듯 일본도 쓰던 약을 대량으로 계속 투여하면서 불황, 실업자 증가, 연금제도 파탄, 저출산·고령화 진행이란 장기 쇠퇴의 길을 가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들은 지역 단위별로 주민들이 함께 해답을 찾는 제도와 규칙의 ‘공유’가 유일한 해답책이라고 제시한다. 저자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획일적인 행정이 아니라 지역 단위로 육아, 고용 창출, 의료 등을 함께 설계하고, 그 효과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실정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장기 쇠퇴가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고, 일본병과 같은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