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곰퍼츠는 “훌륭한 예술가는 뛰어난 사업가”라고 말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루벤스의 ‘비너스는 추위에 떤다’, 반 고흐의 ‘자화상’, 마르셀 뒤샹의 ‘샘물’.
윌 곰퍼츠는 “훌륭한 예술가는 뛰어난 사업가”라고 말한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루벤스의 ‘비너스는 추위에 떤다’, 반 고흐의 ‘자화상’, 마르셀 뒤샹의 ‘샘물’.
빠르게 변하고 갈수록 복잡해지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가치 중 하나는 창조성이다. 많은 사람이 창조성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창조성이 미래 번영과 생존의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이런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최근 방한한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10년 안에 인간만큼 지능적이고 똑똑한 로봇이 개발될 것”이라며 “AI 덕분에 인간이 반복되는 일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매우 고무적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전망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스스로 창조적이라 여기는 이들은 그런 미래에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베르베르같이 창조적인 사람들에게나 고무적일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기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쉽게 떠올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따로 있는 것 같다. 애초에 어떤 사람들만 ‘창조적 유형’을 타고나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인간만의 특성이라는 창조성을 어떻게 키우고, 마음껏 발휘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책마을] 루벤스·뒤샹·워홀…그들은 탁월한 사업가였다
영국 공영방송 BBC의 아트 디렉터 윌 곰퍼츠는 30여년 동안 이런 질문들을 품고 살았다. 그는 작가와 음악가, 감독, 배우의 세계에 살며 놀라울 만큼 창조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성을 어떻게 자극하고 키워내는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창조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밝히려 했다. 곰퍼츠는 《발칙한 예술가들》에서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 중 핵심적이라고 느낀 방법이나 태도를 하나씩 펼쳐 보인다. 책의 원제는 ‘예술가처럼 생각하라(Think like an artist)’다.

저자가 첫 번째로 제시하는 특성은 ‘예술가는 사업가’란 것이다. 통념과 다르다. ‘돈과 성공 등 세속적인 것과 타협하지 않고 배고픔을 감수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집스럽게 추구한다’는 예술가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를 벗겨낸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테르 루벤스는 훌륭한 예술가이자 뛰어난 사업가였다. 조수들이 작업실이자 공장에서 내내 작업하는 동안 루벤스는 화려한 귀족들의 집과 성을 방문해 당대 사회에서 체면을 유지하려면 그의 거대한 바로크 그림을 홀에 걸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루벤스는 대단한 미술 방문판매 사업가였다.

저자는 낭만적인 보헤미안 예술가의 대표 격인 빈센트 반 고흐도 미술 활동의 상업적 측면을 잘 이해한 사업가라고 말한다. 고흐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린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라 미술상인 남동생 테오와 협력 관계를 맺은 벤처사업가라는 것이다.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림으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의무’라고 썼다. 팝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은 돈과 물질주의에 강렬히 사로잡혔고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이라 불렀다. 워홀은 “돈 벌기는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좋은 사업은 최고의 예술”이라고 했다. 저자는 “창작 활동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사업가적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어지는 예술가의 특성들은 창조성의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 창조의 자양분으로 삼고, 진지한 호기심을 품으며, 아이디어를 모방하고 훔치기까지 한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무수한 질문을 던지고 결정하며 고쳐 나간다. 큰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으며,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찾는다. 극단적인 환경에 맞서 용기를 발휘하고, 중간중간 작업을 멈추고 창작자에서 비평가로 돌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변신한다.

저자는 이런 특성을 골고루 갖춘 예술가로 프랑스 초현실주의 미술가 마르셀 뒤샹을 든다. 뒤샹은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뉴욕에 가서 부유한 미국 여인들에게 프랑스 남자의 매력을 내세워 지원을 요청했고, 기술적 부족함 때문에 실패할 것 같자 ‘플랜 B’로 방향을 수정해 ‘세계 최초의 개념 미술 작가’로 스스로를 재탄생시켰다. 왕성한 탐구정신을 발휘했고, 선배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미술계의 핵심적인 믿음들에 용감하게 도전했고, ‘왜 예술은 아름다워야만 할까’ 의심하고 질문했다. 뒤샹의 대답은 소변기를 사서 전시회장에 ‘샘물’이란 이름으로 갖다 놓는 것이었고 그 작품은 새로운 길이 됐다. 뒤샹은 행동보다 생각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만히 멈춰 삶과 창조성,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시대의 맥락 안에서 풀어놓는다. 창조성이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자극을 주고 이정표가 될 만한 내용이 많다. 창조성 중심의 경제에서 상상력을 기반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지닌 개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내용도 곱씹을 만하다.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책의 첫 문장들을 다시 보면 처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누구나 피카소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미켈란젤로처럼 조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예술가처럼 생각은 할 수 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