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 무용수상 수상

러시아에서 활약하는 발레리노 김기민(24)이 한국 남자 무용수로는 처음으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2016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상을 받았다.

'브누아 드 라 당스' 조직위원회는 17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수상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최고 남성 무용수 부문의 수상자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김기민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기민은 지난해 말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공연한 '라 바야데르'의 용맹한 전사 '솔로르' 역으로 파리오페라발레단, 뉴욕시티발레단 등 소속의 쟁쟁한 발레리노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한국인 남자 무용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김기민이 처음이다.

앞서 발레리노 김현웅, 이동훈 등이 남성 무용수 부문 후보에 오른 적이 있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한국인으로는 발레리나 강수진 씨가 1999년, 김주원 씨가 2006년 각각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은 바 있다.

'브누아 드 라 당스'는 1991년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발레의 개혁자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해 제정, 1992년부터 수여한 세계적 권위의 상이다.

아마추어 대상의 콩쿠르와는 달리 한 해 동안 세계 각국의 정상급 단체들이 공연한 작품을 심사 대상으로 한다.

실비 길렘, 줄리 켄트, 이렉 무하메도프 등 세계적 발레 스타들이 이 상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발레 신동'으로 불린 김기민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영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한 뒤로 각종 '최초' 기록을 달고 다니며 한국은 물론 동양인 발레리노로서도 새 역사를 써왔다.

2009년 모스크바콩쿠르 주니어 부문에서 금상 없는 은상, 2010년 미국 IBC(잭슨콩쿠르) 주니어 남자 부문 은상, 바르나콩쿠르 주니어 부문 금상, 2012년 러시아 페름 아라베스크 국제발레콩쿠르 최우수상,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콩쿠르 대상 등 각종 국제 콩쿠르를 휩쓸었다.

국내에서는 2009년 12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10대로는 처음으로 주역 지크프리트 왕자 역을 맡아 국내 직업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주역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한예종에 재학 중이던 2011년 세계 최정상급의 마린스키 발레단에 동양인 남자 무용수로는 처음으로 입단해 2012년 솔리스트, 지난해에는 수석 무용수로 승급했다.

김기민의 아버지 김선호 씨는 18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늘 아침에 문자로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축하한다는 답 문자를 보냈다.

아직 통화는 하지 못했다"며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을 착실히 잘 해왔지만, 나이가 더 많은 후보가 될 것으로 생각해 기대하지 않았는데 큰 상을 받게 됐다"고 기뻐했다.

국립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형 기완(27)씨도 "기민이가 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으니 신기하다.

예술가로서 인정받는 상이라 더욱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앞서 길을 개척해 나간 선배들도 '한국 발레의 큰 경사'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브누아 드 라 당스는 후보에만 이름을 올려도 영광으로 여겨지는데 어린 무용수가 대단한 일을 해냈다"며 "김기민이 어리기는 해도 체격 조건부터 테크닉, 표현력, 동물적인 감각 등 무용수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춰 심사위원들도 상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김기민은 러시아 선생님의 지도를 받기는 했지만 주로 한국에서 교육을 받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더 큰 경사"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 이 상을 받은 무용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발레의 변방에 속하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처럼 세 명이나 수상자를 배출한 사례는 드물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최초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자인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은 "너무나 기쁘고 축하할 일"이라며 "이번 수상이 대한민국 발레리노들이 세계에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inishmore@yna.co.kr